그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유키코의 신상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다에코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발전이 있었다. 결국 그것이 유키코의 운명과도 어떤 관련성을 갖게 되었다. (21)
그리고 유키코의 얼굴에 나타나는 반응을 살펴봤으나 유키코는 별다른 기색도 없이 조용히 다 듣고나서, <순서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연기할 이유는 없다. 신경 쓰지 말고 두 사람을 맺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나중에 한다고 해서 타격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희망을 버리지도 않는다. 나는 나대로 행복한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이 있다>고 말했다. (26)
과연 어린아이들은 곧잘 훌륭한 말을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이 방에 있으면 이상하게 머리가 눌리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눈앞에 그 원인이 있는 듯했으나 그것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는데 에쓰코가 정통으로 알아맞힌 것 같았다. 과연 그 말을 듣고 보니 도코노마의 양귀비꽃 탓도 분명히 있는 듯했다. 밭 같은 데 피어있는 양귀비꽃은 아름답지만, 도코노마에 이렇게 하나만 달랑 꽃병에 꼿혀 있으면 어쩐지 으스스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130)
사치코는 유키코가 어렸을 때부터 참을성이 있어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훌쩍거리며 울기만 했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도 책상에 엎드려 몰래 울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164)
<유키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다하는 애야.> 하고 사치코가 말했다. <......두고 봐. 머지않아 남편이 생겨도 아마 자기 뜻대로 하고 살테니.> (205)
그녀는 인형 제작이 예술이고 양재가 품위 없는 직업이라는 오쿠바타케의 의견은 일소에 부쳤다. 그녀는 예술가니 하는 헛된 이름은 바라지도 않으며 양재가 품위 없다면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애당초 오쿠바타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시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뻔한 속임수 같은 인형 같은 걸 만들며 기뻐할 기대가 아니고, 여성이라고 해도 실생활과 관련이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수치스러운 시대라는 얘기였다. (217)
사치코는 자신의 생활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두 자매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 그녀의 가정은 부부 사이도 원만했고, 에쓰코는 다소 손이 가기는 하지만 외동딸이어서 원래라면 세 식구가 별다른 풍파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런저런 별화를 몰고온 것은 두 자매였다. 그렇다고 두 자매가 성가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 덕분에 항상 가정이 풍부해지는 것 같고 분위기 또한 화사해지는 것을 사치코는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쾌활하고 야단스러운 성격을 누구보다 많이 이어받은 그녀는 적적한 집안을 몹시 싫어해서 항상 떠들썩하고 발랄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357)
사치코는 종종 남편이나 딸보다 유키코나 다에코에게 마음을 쓰는 시간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도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에게 이 두 자매는 에쓰코 못지 않게 귀여운 딸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이번에 혼자 있어 보니 비로소 자신이 친구다운 친구를 갖지 못했다는 것, 형식적인 교제 이외에는 부인들과도 별로 사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두 자매가 있어서 꼭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로제마리를 잃어버린 에쓰코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별안간 적막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357)
<그렇다면 그렇다고 일찌감치 털어놓으면 좋을 텐데, 사람을 잘도 속여 왔다고 생각하면, 이번에는 화가 나서...... 정말 화가 나서.......> 울 때면 사치코는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되었다. 새빨갛게 상기되어 분한 눈물을 머금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서 데이노스케는, 항상 이런 표정으로 자매들끼리 싸움을 했을 먼 옛날 어릴 때의 모습을 정다운 듯 그려 보았다.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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