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 중에 '한이 맺히다, 한이 서리다' 등의 표현에서 '한'이라는 개념은 영어로 바꿔 표현하면 'Han'이다. 영어권에서는 '한'의 개념을 명확히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이어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외국어 중에도 그런 표현들이 종종 있다. 우리나라 말로 명확히 대체될 수 없는 개념들. 또는 일본어의 문법도 그렇다. 우리 말에는 없는 문법이 존재한다.
단지 새로운 말을 배우는 거지만,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의 사고방식이 녹아 있다.
그리고 줌파 라히리는 타성에 젖은 글쓰기를 반복하던 스스로에게 있어서, 낯설고 새로운 언어 이탈리아어로 글을 씀으로써 작가로서 새로운 인격을 갖출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에게는 새로운 글쓰기를 위한 시도이자 위대한 모험이 아니었을까?
문득 쓰기를 게을리하는 스스로에게는 '타성에 젖은 글'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반성을,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는 열정을 일으키는 책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에도 도전해보자.
지적 허영이면 어때... 열심히 읽고 쓸 뿐이다.
p.s
이 책을 읽다보면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이 떠오른다. 여성 작가라는 점도 같지만 그 두 작가는 각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자국의 혼란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하면서 어쩔 수 없이 문맹의 입장이 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 작가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줌파 라히리는 영어권 작가이면서도 낯선 언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갖고 싶어'한다. 거기에서 나아가 이탈리아어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줌파 라히리 역시 어린 시절 언어에 대한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가족들은 인도 벵골 출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살았다., 줌파 라히리는 집에 있을 때는 벵골어를 써야 했고 학교에 있을 때는 영어를 완벽히 구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