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발을 앞둔 시골 마을 '고모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 그들을 욕하고 두들겨 패는 정신나간 엄마. 그들을 방치하는 아버지. 6.25 전쟁통에 버려지기 싫어서 죽기 살기로 고모를 쫓던 아버지는 산불에 휩쓸려 결국 혼자가 되었고, 이후 머슴으로 생을 이었더랬다. 본처와 아들딸을 내버리고, 젊은 여자를 데려다가 고모리에 살며 썩은 물에서 낚시를 한다. 이때의 '젊은 여자'가 바로 앨리시어 형제의 정신나간 엄마다.

앨리시어의 어머니가 짐승을 다스린다. 씨발 상태가 되어 씨발년이 된 그녀는 그녀가 가진 짐승의 머리뼈부터 꼬리뼈까지를 다룬다. 짐승을 향해 팔을 휘두를 때 그녀는 관절을 어깨 뒤쪽까지 젖혀 완전한 힘을 싣는다. ...(중략)
앨리시어의 어머니가 자신의 짐승을 다스리는 동안 그는 한두번 부근에 나타나서 하지 마라, 애들에게 그렇게 하지 마라, 말리다가 어느 순간 슬쩍 사라졌다. ...(중략) 씨발 년은 씨발 년일 동안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무적이다. ... 이마를 찌르며 이 병신 같은 대가리를 낳느라고 아래가 터져버렸다고 말한다. 그 고통을 니가 알아? 어미의 고통을 알아 몰라 병신 새끼들아 대답을 해봐 내 몸은 끝장났어 너희들이 엄청난 대가리로 끝장을 냈단 말이다 ...(65-66쪽)


이 책의 4할은 걸쭉한 '씨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처참한 '개'의 삶이 인물의 삶을 은유한다.

 마을 앞에 버려진 개의 시체가 처음에는 그저 낮잠 자는 모양 같더니 다음에는 배가 터질 듯이 부풀고, 그 다음에는 살이 녹아내려있다. 서사가 이어지면서 점진적으로 부패의 과정이 그려지고 이는 시간의 흐름을 '썩어가는 과정'에 빗대며 삶을 조롱한다.

앨리시어 형제의 집에는 잡아먹기 위해 길러지는 개가 있다. 아무런 의지없이 새끼를 낳고, 새끼들은 잡아먹히고 어미가 늙으면 새끼들 중 굵은 암컷을 골라 다시 새끼만 낳게 만든다. 이 타의에 의해 이어지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계보는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의 무력한 삶, 어미에게 학대받고 학교와 동네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처절한 삶과 닮아있다.
앨리시어는 자신의 육체적 성장을 자각한 후 폭력적인 엄마를 관찰하며 전복의 날을 꿈꾼다. 언젠가 어머니를 쓰러뜨리겠다. 맞서싸우겠다. 그러나 그 전복은 마치 개장 속의 암컷이 늙어서 그 자리를 양보한 후 다음 새끼들에게 개같은 삶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 어머니를 쓰러뜨리고, 그 이후에는 어쩌겠다는 걸까?

고모리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불행하다.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를 둔 고미는 여자아이처럼 행동하는 인물이다. '호모'라고 놀림받고 아버지에게는 두들겨 맞는다. 원래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단추공장의 소년은 비싼 가구들을 떠안고 쫓겨나 단추공장에 허름하게 지내면서도, 자신은 고모리와 별개의 사람이라고, 이런 쓰레기같은 마을과 자신은 하등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은 병신이 아니라며, 그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도시까지 혼자 척척 나아가 어느 건물 머릿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돌아왔던 동생은 목구멍 가득 흙을 삼키고 죽었다. 이후 앨리시어가 찾아간 머릿돌에 동생의 이름은 이미 빗물과 먼지에 씻겨 지워져버렸다.

삶은 정말 개같고 '씨발'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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