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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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동성에게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뚜렷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창시절에 밤잠을 설치며 느꼈던 뜨거운 감정이 과연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정에서 비롯된 집착을 혼자 사랑으로 오인했던 건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동성의 친구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은 사춘기에 종종 일어나는 현상처럼 치부되곤 한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이제는 십여 년이 지난 당시의 감정을 웃으며 추억하고 서슴없이 말을 꺼낸다. 심지어 당시에 사랑했던 언니에게조차도 술 한 잔 기울이며 ‘그때 많이 좋아했지요’라며 진심 어린 농을 친다.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이 내게 깊게 다가온 것은 나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청소년기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힐러리 클린턴을 존경하며 그녀처럼 멋지고 똑똑한 여성이 되는 게 꿈이었던 소녀였다. 여중, 여고에 진학하며 꾸준히 학업에 정진하려던 그녀 주변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여자들끼리 연애를 하는 ‘이반’이 유행처럼 등장한 것. 칼단발에 남성처럼 행동하는 멋진 여성과 사귀는 여자. ‘나’는 그것이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연극부에 들어가 민선 선배와 만나면서 ‘나’ 또한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여자인 민선 선배를 사랑하게 된 것을 알고 놀라면서도 그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대개의 첫사랑이 그러하듯 민선 선배와의 사랑에 해피엔딩은 없었다. 스무살이 넘고 대학생이 된 그녀는 빠르게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에 편입해간다.

치유와 포용의 소설 쓰기

‘나’는 이십대가 되어 갑자기 나타나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는 인희에게 불편함을 느끼며 과거의 사건을 ‘그땐 다 미쳤었어’라고 일갈한다. 학창시절 이반의 모습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인희를 한심하고 부끄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오늘의 ‘나’를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으로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눈앞의 인희에게서 과거의 자기 자신, 민선 선배에게 늘 못난 모습만 보여주다가 끝이 나버렸던 스스로가 겹쳐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말을 꺼내기 부끄러운 과거의 일을 ‘나’는 어째서 소설로 기록했을까?

주인공에게(작가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치유의 과정이자 과거의 자신을 끌어안는 시도이다. 부끄러워하고 멸시했던 과거 자신의 일부분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그리고 그때의 그 감정은 진정 사랑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오늘 내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지난날의 사랑과 미숙한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사랑하는 ‘나’인 것이다.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대중가요며 드라마, 책 등 ‘사랑’이라는 말이 참으로 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대놓고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 이제는 약간 쑥쓰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김세희 장편소설의 제목 『항구의 사랑』 앞에서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라는, 작가의 우직한 표정을 책에서 보아버렸기 때문이다. 민선 선배가 해변의 모래사장에 적었던 ‘사랑해’와 주인공이 말로 표현조차 하기 어려웠던 벅찬 감정의 사랑 사이의 간극은 무엇일까? 당시 여자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나누었던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단지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끌어다 붙였던 걸까?

공공연히 전시되고 쉽게 소비되는 ‘사랑’이 흔한 시대이기에, 내 곁에 놓인 사랑들과 지나갔던 사랑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만약 당신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느끼고 있다면,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을 권하고 싶다.

* 게슈탈트 붕괴 현상: 어떤 단어를 반복하여 되뇌다 보면 일시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생소하게 느끼게 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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