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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두 얼굴
김태훈 지음 / 창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산 지 4년 만에 읽었다.
저자이신 김태훈 씨의 강의가 있다고 해서 산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때 사서 전시용으로 놔두다가 이번에 생각이 나서 읽게 되었다.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구국의 영웅? 박정희가 부각시킨 조작된 영웅?
이유야 어떻간에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 유관순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부분이 충무공 이순신이 아닐까 한다.
평소 조선이라는 옛 나라를 굉장히 싫어하는지라 관심이 없어, 애석하게도 충무공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박정희가 부각시켜 만들어진 영웅이라는 이미지만 나에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10년도 더 이전인 고2. 당시 환단고기에 심취해 있던 나에게 정용석의 《중원》이라는 책은 충무공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책이지만, 고1 때까지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에 빠져 살았던 나에게 고2 때 접한 환단고기의 충격은 내 정신세계를 송두리째 뒤집어엎어버릴 정도의 심했고, 그 가운데 사서 읽었던 정용석의 《중원》이라는 책은 내게 심히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안에 서술되어 있던 임진왜란에 대한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소설과도 같은 유치찬란한) 서술이 그때는 가장 크게 뇌리에 박혀 20대 후반까지 이어져 왔던 것 같다.
저자이신 김태훈 씨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인데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빠져 몇 년간 시간 나는 대로 사서를 뒤지면서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역사학자가 되지 못한 나에게 저자는 그야말로 내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롤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통해 성웅 이순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밝히는 작업을 했다고 하였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기에는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것 같다.
우선 많은 사서를 인용하여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것은 좋았다. 하지만, 저자도 한국인인지라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중간 중간 '역시 이순신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등의 (노래로 말하자면) 추임새 같은 것을 집어넣었고, 한산대첩이나 백의종군 후 다시 지휘권을 잡고 출전했던 명랑해전 등을 서술할 때는 그의 격한 감정이 읽는 독자에게도 전해질 정도로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700여 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어 적어본다.
전쟁 막바지였던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군이 전면 철수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그 소식을 듣고 선조가 남쪽으로 내려가 군사와 백성의 사기를 높여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때 사관이 《선조실록》에 적은 말은 기가 막히다.
「임진왜란 때는 흉봉이 경기도 내에 이르지 않아서 임금의 수레가 이미 서쪽으로 파천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왜적이 겨우 남쪽 변방에 이르자 내전이 먼저 황해도로 옮겨 갔다. 7년 동안 행한 모든 것이 움츠려 구차하게 보전하려는 계책이었고, 쇄신 분발하여 적을 섬멸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리를 진작시키지 않았으니 지금 비록 남쪽으로 내려가겠다는 하교가 있지만, 신은 믿어지지 않는다.(597쪽)」
전쟁 중에 임금이 한 모든 일이 구차하게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 뿐이었다는 이 말이 과연 사관만의 생각이었을까? 아마 조선에 사는 모든 백성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정신질환자가 왕으로 앉아있었고, 내당이 옳다 니당은 그르다 하는 정신병자들이 관리라고 앉아있었으니 나라가 잘될 턱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700쪽이나 되는 책을 이틀 반 만에 읽었다. 이렇게 빨리 읽은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그 정도로 이 책은 흥미진진하였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선조와 그 대신들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2009년 08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