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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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세계가 있다.


대지의 움직임을 보닐고, 그런 대지의 힘을 변형해 사용할 수 있는 오로진이라는 존재. 에쑨은 본능의 힘을 감추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흑인 여성이다. 허락되지 않은 힘이라도 되는 양 수호자가 붙어 관리하고, 그들의 힘이 세상을 끝낼 수 있을 만큼 위협적이고 통제가 되지 않으니 임무를 주어 통제시키려 한다. 오로진의 본능은 위험하다. 한 번 시작되면 멈춤을 모르고 폭주하니.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 이와 아이를 낳는 게 임무라니.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대표 작품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가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올랐다. 여성을 그저 번식의 도구로만 이용하려는 남성.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 나쁜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했다.


에쑨은 보육교사로 일하며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에쑨은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서게 된다. 자신의 어린 아들 우체가 피범벅이 된 채 거실 한쪽에 식어 있었다. 남편인 지자와 어린 딸 나쑨이 보이지 않는다. 우체를 죽인 사람은 지자가 분명하다. 에쑨은 당장에 남편과 딸을 찾아 길을 나선다. 대체 우체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왜 죽여야 했던 걸까. 오로진의 힘이 그렇게도 무서웠던 걸까. 이 잔인한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암담하고 냉혹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은 세계가 여기에도 있다.


빠르고 매서운 바람이 일곱 계절 위를 기세 좋게 휩쓸고 지나간다. 수목이 좌우로 흔들리자 드디어 사태를 깨달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지면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너도 땅바닥과 함께 흔들리지만, 움직임의 패턴을 알기 때문에 기우뚱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그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간단히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네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니까.

이 사람들이 우체를 죽였다. 이들의 혐오가, 두려움이, 이유 없는 폭력이. 바로 이들이.

(그가)

네 아들을 죽였다.

(지자가 네 아들을 죽였다.) -85~86쪽


작품의 화자가 교차하면서 세 줄기의 이야기가 각자의 방식으로 흐른다. 에쑨과 다마야, 시에나이트 모두 자신의 힘을 억압당한 채 살아간다. 이유 없이 핍박받고, 가차 없이 처벌당하는 오리진과 같은 존재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점이 가장 무섭다. 창조해낸 세계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억압당하고 통제당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지식을 동원해 그려내고자 했다. 어느 지점까지는 생소한 용어와 의미에 가로막혀 쉽게 읽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부서진 대지 3부작 중 그 첫 번째 이야기를 끝낸 지금, 솔직히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외면해서는 안 될 작품임은 분명하다. 에쑨이 길을 떠나며 만나는 사람들, 그들 앞에 닥치는 시련들 모두 현실에도 존재한다. 저자의 손끝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생각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 특히나 사랑 없는 육체관계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색욕에 눈이 멀어 배우자 외 다른 이성 또는 동성과 몸을 섞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계속 신경에 거슬리는 생경한 비속어 또한 잠깐씩 흐름에 파장을 일으킨다. 작품 고유의 분위기가 강해 접근하기 어려운 점도 분명 있다.


또 다른 의미로 다섯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 꼭 읽을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100쪽 넘기기까진 읽기 어려울 수 있다. 고비만 넘기면 점점 수월해지고 어느새 작품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SF 장르에 거부감 있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안에 담긴 건 결국 허구가 아니니. 《오벨리스크의 문》 앞으로 가 봐야겠다.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에쑨이 지자와 나쑨을 찾을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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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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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라도 엄마는 엄마니까.


스즈키 루리카의 후속작을 계속 기다렸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그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도저히 《엄마의 엄마》가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부터 가슴을 맴돌아 자꾸만 생각나게 했다. 이번 역시도 마음을 사로잡는 일러스트 표지라 더욱 좋았다. 일상적인데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하나의 엄마, 마치코 같았다. 도저히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후루룩 읽히는 문장은 여전했다. 깔끔하고 담담해서 인물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세 편의 단편으로 묶여 있다. 단편소설을 선호하는 편은 아닌지라 망설이는 마음도 있었지만 저자를 믿고 읽어 나갔다. ‘태양은 외톨이’에서 하나의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가 등장한다. 엄마라 이름 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만큼 매정한 마치코의 엄마, 다쓰요 씨. 끄트머리 즈음 역시나 저자의 주특기가 펼쳐진다. 마지막에 훅, 하고 찌르는 감동.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절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래서 내가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좋아했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머, 머물 곳은 있으세요? 어디든.”

갑자기 ‘머물 곳’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사치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치코는 머물 곳이 없다고 했다. 이 사람에겐 있을까? 어딘가에.

“머물 곳? 머물 곳이라. 나한텐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어. 이 세상 어디에도. 태어났을 때부터.” -141~142쪽


다쓰요 씨는 딸이 보고 싶어 찾아왔던 걸까. 천금 같은 아이(真千子)였으니까? 다쓰요 씨가 마치코에게 한 짓은 결코 용서 받지 못할 일이다. 몇 번이고 버림 받아야 했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참 아프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머물 곳’ 하나 없던 그에게 유일하게 머물 수 있던 곳이 마치코 옆 아니었을까. 엄마니까, 엄마라서 절대 내치지 못할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 아닐까.


그 뒤에 이어진 두 편의 이야기 또한 예상을 뛰어넘는다. 기도 선생님을 못 보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막판에 등장해 줘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기묘한 매력이 있는 기도 선생님! 저자가 기도 선생님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후속으로 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보내긴 아주 아쉬우니 말이다.


오후에 햇살이 아주 따뜻한 날 읽고 싶은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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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급 공무원입니다 - 88년생 요즘 공무원의 말단 공직 분투기
이지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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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공무원 시험이나 봐 볼까?’


공무원 시험이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해 응시한 적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호기심에 갔던 시험장. 그 긴장감 넘치고 숨 막히는 교실에서 보낸 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많은 이가 왜 그토록 공무원이 되고자 공부하고 시험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까. 안정감 있는 직장, 공무원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인식 때문은 아닐지 조심스레 짐작할 뿐.


그렇다면 공무원이 정말 좋은 직업일까?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지금도 느끼고 있고, 이 책을 읽고 더 절실히 느끼고 있는데 공무원은 좋은 직업이기는 하나 쉬운 직업은 아니다. 절대!


“9급 공무원들은 책상에 앉아 등·초본 발급해 주고 민원 보는 게 전부 아니에요?” - 204쪽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나 역시 그런 줄 알았다. 컴퓨터 앞에서 탁상행정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탁상행정(쉴 새 없이 들어오는 공문 처리, 각종 증명서 발급 등)은 기본으로 해야 하고, 각종 사업 신청 접수에 농촌 일손 돕기, 선거 도우미, 행사(노인의 날, 체육대회 등) 도우미로 차출되는 건 기본이었다. 거기다 눈이나 비가 많이 오면 비상근무에, 초과근무(야근, 주말근무)까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나날이 계속되는 삶이었다.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세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곁에서 보조하는 사람도 버거운데, 담당으로 맡게 되면 얼마나 고되고 힘들까 싶었다. 저자는 먹고살기 위해 공무원이 되었다고 했다. 아마 그런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하지만 먹고살려고 하는 일에는 한계가 금방 찾아온다.


누군가 나에게 공무원 하면서 먹고살 만하냐고 묻는다면 ‘하기 나름’이라고 답하고 싶다. 오히려 보수나 연금, 안정성만 보고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공무원이 하는 일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재직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수령하는 공무원 비율이 최근 5년간 전체 퇴직자의 14.9%나 된다고 한다. 2019년에는 재직 기간 1년 미만 퇴직자가 26.5%에 달했다. -47쪽


힘들게 공시에 합격해 꿈꾸던 공무원이 됐는데도 퇴직률이 높다. 두 번째로 나를 담당했던 주사님이 얼마 전 퇴직하셨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같이 근무할 때, 출장 다녀오는 차 안에서 주사님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스쳤다. “난 정년까지 안 할 거야. 조금만 더 하고 그만두려고.” 진심일 줄은 몰랐는데.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조직에서 느끼는 갑갑함과 무기력 때문이다. 한창 젊고 공무원이라는 자부심도 있고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시기에 기대치에 맞는 일을 할 수 없다. 관료제는 거대한 공무원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최적의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일과 직장에서 자아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일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확인이 필요한 이들에게 말단 공무원의 단순 반복 업무는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다. -281쪽


저자 역시 힘든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6개월의 휴직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 자신에게 시간을 들여 자기 자신으로서 조직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이 멋있게 보였다.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서. 더 이상은 먹고살려고만 일하는 것 같지 않아서 보기 좋았다.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 지금 막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선배의 따뜻하고 현실감 넘치는 조언이 부드럽게 녹아 있어 적잖은 위로가 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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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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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도코로를 잘못 들어 나온 제목.. 독특하고 신선한 스토리에 마음이 끌려 구매합니다. 반전이 있을 것 같아 더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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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중1 - 양손에 놓여진 권력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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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대세에 영향을 못 줘. 중요한 것은 민심 위에 군림하고, 그 민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지.” -433쪽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는 판시엔. 한 손에는 감사원, 다른 한 손에는 내고라는 권력을 쥔 그는 점점 더 대담한 정의에 다가가려 한다.


상1 마지막에 큰 부상을 입은 판시엔은 징왕과 뤄뤄, 완알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목숨을 부지한다. 빠르게 몸을 회복한 판시엔은 황제와 대면하는데, 황제는 판시엔이 자신의 아들이라 말한다. 판시엔은 황제의 아들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내고. 예칭메이가 남긴 유일한 내고를 손에 넣는 것.


상편에 비해 등장인물도 부쩍 많아지고, 세계관 배경도 풍성해진다. 어지러운 권력 다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건 하나를 밝혀내면 또 다른 사건이 터져서 지루할 틈이 없다. 그 흐름을 따라가기 바쁠 지경. 드러나지 않던 장공주의 심경도 알 수 있어 이야기의 흥미가 높아졌다.


아름답지만 검처럼 날카로운 눈썹은 아름다운 여인의 것도, 호방한 남자의 것도 아니다. 그저 맑고 깨끗하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을 뿐이다. -137쪽


판시엔이 예칭메이의 초상화를 보는 부분이 잊히지 않는다. 예칭메이가 어떤 인물일지 처음부터 궁금했는데 이제 조금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그녀는 어쩌다 생을 달리하게 된 걸까. 그 비밀도 하편에서는 밝혀지게 되려나. 한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 점점 적이 늘어나는 가운데 판시엔 목숨줄이 위태위태하다. 의문의 습격을 받은 그는 이번에도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한창 진지하게 읽는 도중 나오지 않던 비속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한 우물파인 줄 알았던 판시엔이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완알보다 둬둬가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다 그런 건가. 문득 얼마 전 정주행한 <펜트하우스>의 주단태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판시엔이 그렇게까지 파렴치한은 아닌 것 같은데! 앞으로 남은 세 권의 이야기가 더 기다려진다. 두고 보겠다, 판시엔!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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