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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이 될 때 -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ㅣ 맞불
안희제.이다울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평점 :
몸이 다시 아프단 소식은 전하기에 앞서 망설여집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고통을 전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도를 넘는 응석을 부리게 될까 두렵고 상대가 제게 딱히 건넬 말이 없어 무력해질까 봐 두렵습니다.│45
그 자신도 만성질환을 겪고 있는 연구자 수전 웬델Susan Wendell은 자신의 책에서, “어떤 진단이든 진단명을 받았을 때 느끼는 안도감의 일부는 결국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학적 권위가 인정해준 데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47
다른 몸, 타인의 아픔을 인지하고 그것에 관해 묻는 일, 자신의 몸을 설명함으로써 응답하는 일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픈 이야기들은 우리를 환자로 환원하여 의료화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리가 어떤 이야기든 꺼낼 수 있도록 하는 튼튼한 기반이기도 했죠.│81
2인칭의 대화란, 어쩌면 나의 감정과 경험이라는 1인칭의 무엇과 내가 습득한 지식이라는 3인칭의 무엇을 모두 당신이라는 2인칭의 존재를 통해 다시 불러내어, 당신을 중심에 두고 재구성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요.│161
나아지고 싶습니다. 어떤 통증에는 간혹 쾌감도 있지만 대부분의 통증은 불쾌한 감각을 가져다주잖아요. 저도 분명 질병을 쫓아내야 할 악령이나 결함 따위로 취급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픈 몸에 걸맞은 다양한 삶이 조성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끊이지 않는 통증 그리고 불길한 통증 앞에서 우리는 각종 진통제를 삼킬 수밖에 없잖아요.│169
저희가 용어에 대한 이해와 최애 캐릭터만 다르겠습니까! 아무리 만성질환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지만 말입니다. 제가 저항하고 싶은 것은 아픈 사람들을 그저 한 카테고리로만 묶는 것입니다.│219
#몸이말이될때 #안희제 #이다울 #동녘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동녘의 편지 시리즈 ‘맞불’ 두 번째 이야기는 공감을 넘어 통감하며 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간다(정신적, 육체적 아픔과 통증 모두 포함).
잦은 두통으로 소염진통제를 항상 구비해 다니고, 종종 과민성인 위장이 고장나기도 하며, 방광염을 두 번 앓고, 완치가 불가하단 이석증은 수시로 재발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니 통감할 수밖에. 아픔과 통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섬유근육통과 크론병을 진단받고 살아가는 두 저자는 훨씬 더 힘든 상황인데도 학업을 이어가고, 글을 쓰며,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대단하단 말 외에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은 질병의 언어들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 폭넓게 다양한 주제로 뻗어 나간다. 발견되는 말들, 2인칭의 말들, 넓어지는 말들, 다시 태어나는 말들로 구분되어 두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말로 옮겨진다. 특히나 2인칭의 말들은 생경한데도 끌림을 동반한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3인칭 관찰자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몸의 말은 2인칭 시점이 존재한다. ‘당신’으로부터 파생되는 시점이라니. 상당히 이타적이고 다정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끝으로 갈수록 심오해지는 대화에 괜히 긴장하며 읽기도 했다(답장과 답장을 잇는 이음새가 그만큼 탄탄하게 느껴졌다).
경중을 따지지 않고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길 권한다. 세상이 아픈 사람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다정하다가도 다정하지 않고, 상냥하다가도 상냥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다면 읽어 보시길. 불특정 다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외로움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어떤 말들이 이어질까. 이번에도 꺼지지 않을 ‘맞불’ 시리즈를 기다리게 된다.
*동녘에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