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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사랑과 배려와 존중과 기쁨을 담아, 알로하!
그리고 밥 먹듯 레이를!
1917년, 열일곱의 버들 애기씨는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머나먼 포와로 떠난다. 이 글을 읽기 전엔 사진결혼이란 개념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충격을 크게 받았다. 꼴랑 사진 한 장. 거기 들어 있는 사람의 아내가 되는 일이 사진결혼이었다. 목소리 한 번, 눈길 한 번, 따스한 손길 한 번 느껴 보지 못한 채 서류상으로 먼저 맺어진 인연. 버들과 태완이 그러했다. 홍주와 덕삼이 그랬고, 송화와 석보가 그랬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포와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은 소녀 셋. 그러나 현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꿈처럼 황홀한 세상이 아니었다. 사진과는 영판 다른 남자와 같이 살 운명에 처한 소녀들. 버들은 유일하게 사진과 동일한 젊은 태완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홍주의 남편도 사진과 다르게 나이가 많았고, 송화의 남편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무신 팔자가 이렇노. 니 저레 늙은 신랑캉 우예 사노? 내도 조덕삼하고 사느니 과부로 늙어 죽는 기 낫다. 송화야, 니캉 내캉 고마 바다에 빠져 죽어 삐릴까?”
홍주가 송화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송화는 남의 이야기인 양 멍한 얼굴로 홍주가 잡고 흔드는 대로 있었다. -83쪽
지금 시대에 이런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사랑 없는 결혼도 경악할 만한데 속아서 결혼하게 되다니. 실제 과거 여성들이 겪은 뼈아픈 현실에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 통치 하에 있던 민족의 설움도 컸지만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모습이 얼음처럼 시렸다. 꿈도 포기한 채 그저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 그 당시 고통에 비할 순 없지만 저자가 생생하게 그려낸 덕분에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사탕수수밭에 젊은 날을 바쳐야 했던 사람들. 결코 달지 않았던, 사탕수수 이파리처럼 날카로웠던 고단한 인생들.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세월. 사랑 없이 시작해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 한 권의 책에 이 모든 일들이 담겨 있다니 경이로움 그 자체 아닌가.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레이 또한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두 팔로 안는 것과 같은 의미의 레이는 사랑을 뜻했다. -354~355쪽
거기다 몰입은 어찌나 잘되는지 펼쳤다 하면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한국문학은 현실반영이 가감없어 읽기 힘든 분류다. 지금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 읽어 보고 싶으나 읽히지 않아 즐기지 못 했다. 헌데, 이 작품은 새벽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감기는 눈꺼풀을 얼마나 많이 들어올렸는지 다 헤아릴 수 없다. 세 여인이 웃으면 웃고, 울면 같이 울었다. 가감없이 공감했다.
저자를 모르고 읽어 더 좋았던 점은 편견이 눈을 가리지 않아 마음껏 작품에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창비의 ‘눈가리고 책읽는당’이 중단돼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그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정말이지 행복했다.
이금이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오늘 출간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월급 받고 바로 세 권 구입할 예정이다. 첫 번째는 읽는 내내 생각나고 꿈에서까지 만난 나의 엄마, 두 번째는 버들과 태완을 보면서 내내 생각했던 나의 빛과, 세 번째는 좋은 것만 보면 내 생각이 난다는 나의 불사조 언니 두 손에 선물해드릴 테다.
마지막까지 심장을 쿵! 하게 만드는 요렇게 좋은 작품을 혼자 알고 있기가 너무 아까우니 널리 많은 분들께 전해야겠다. 한국문학 장벽을 와장창 깨뜨려 준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 알로하를!
(+) 읽다가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 덧붙입니다.
169쪽: 그런데 태완이 선 그대로 채 버들을 보았다. ☞ 선 채 그대로
317쪽: 태완이나 조국의 소식과 별개로 부들을 비롯한 무지개 회원들의 삶은 ☞ 버들을 비롯한
353쪽: 나있대별로 그룹이 달랐지만 ☞ 나이대별로
357쪽: 부모 간 자식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 ☞ 부모 자식 간
378쪽: 나는 술 마시고 울에 뻔한 이모보다 ☞ 울 뻔한
* 창비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