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철나무
도다 준코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개라서, 바보라서 다행이라는 사람이 다행이기를


서포터즈 활동 이후, 소미미디어 작품 서평은 처음이다.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날름 서평단에 신청해버렸다. 푸른색이 주를 이루고 눈꽃처럼 얼어붙은 이파리를 담아낸 표지는 그야말로 본 적 없는 디자인이었다. 파랑과 초록. 둘 다 좋아하는 색에 톤까지 진하고 어두운 편이라 엄청나게 취향이었다. 반드시 출간 전에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마음이 닿았는지 당첨자로 선정됐다.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실물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쇄도 선명하고 제단도 깔끔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명절 전날 받아 더 기뻤던 것 같다.


소개 글부터 강렬했던 작품.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서 빠르게 읽어냈다. 눈이 닿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가독성도 좋고, 번역도 좋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원에 대해 배울 수 있어 더 좋았다. 넉줄고사리로 만든 쓰리시노부. 그 밑에 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맑게 울리는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진한 인상을 남겼다.


댕그랑, 소리가 났다. 창밖에 쓰리시노부가 보인다. 살랑 부는 바람에도 풍경이 흔들린다. (중략) 이끼와 넉줄고사리가 촉촉이 젖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420쪽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 울음이 터져서 애먹었다(이번 직장에서 책 읽다 운 건 처음). 다 읽자마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추천했을 정도로 여운이 깊고 대단했다. 저자의 국내 출간작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첫 시작부터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다니. 저자의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기다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난봉꾼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매일 여자를 끌어들이는 집에서 자란 조경사(정원사) 소가 마사유키. 아무 데서나 여자의 교성이 들리는 집에서 그는 혼자 밥 먹고, 혼자 담배 피우고, 혼자 일했다. 물론 할아버지, 소가 세이지에게서 정원 가꾸는 일을 배웠지만 그 외 가족적인 무언가는 오가지 않았다. 아버지, 소가 도시오에게서는 하나 배울 게 없었다. 밥 먹듯 여자를 갈아치우는 사람이라고만 보여졌으니. 조경사의 재능 또한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으니. 그런 마사유키가 정원 가꾸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해 온 일이 있다. 스무 살 때부터 13년간 부모가 없는 소년, 시마모토 료헤이를 돌봐온 것. 료헤이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 시마모토 후미에는 료헤이를 돌보는 마사유키를 탐탁지 않아 한다. 후미에의 행동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3년 전 일어난 사건. 모든 건 그때 부채집 정원에서 시작됐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알고 있던 사실들이 비틀어지고,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면서 작품의 진가가 발휘되는 느낌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도 있지만 때로는 보이는 게 전부일 때도 있다.


마사유키라는 인물은 바보 같을 정도로 료헤이에게 속죄하는 인생을 자처한다. 스스로 선택한 속죄의 삶. 그 길이 평탄할 리 없다. 후미에에게 굴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는 료헤이 돌보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과연 마사유키가 잘못한 일이 뭘까?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걸까? 어떤 범죄에 가담한 건가? 온갖 의문이 드는데 작품 속 모습에서는 절대 그런 일을 했을 것 같지 않다. 조경사 일 또한 어찌나 열정적으로 임하는지 그 정성에 고개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만큼 착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다. 화상 흉터가 찢어질 듯 아파도 속죄의 몸짓은 계속된다. 그 지극한 정성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사람 앞에서 울었다. 개라서 다행이다, 바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20쪽


이 마지막 한 줄을 위해 저자는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무슨 뜻일까, 누가 하는 말일까. 계속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다. 미스터리 카테고리가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다. 바로 이전에 읽은 모리사와 아키오의 《나쓰미의 반딧불이》 또한 울면서 봤지만 눈물의 의미가 다르다. 《나쓰미의 반딧불이》는 잔잔하고 따뜻해서 울었다고 한다면, 《눈의 소철나무》는 다행이야, 라는 마음에 울 수밖에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하나밖에 몰랐던 바보. 이제 정말 다행이야, 라는 느낌에. 안도의 눈물이라고 해야 할까. 미스터리 소설로 정원에 대해 알고 싶고,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을 원한다면 이 작품 반드시 읽고 2020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도다 준코라는 작가를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후속작 출간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겠다.




* 소미미디어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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