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알렉산더 지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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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도 여우는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랑을 잃어도, 자신조차 불타올라도, 그 불길에 다른 무언가가 태워진대도 사랑으로 다시 살아진다.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이 《에든버러》 읽는 내내 생각났다(아피아스 제에게서 닉 게스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 정식 출간도서 중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아직은 퀴어, 동성애 하면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재작년 퀴어 작품 읽었을 때도, 올해 읽었을 때도 역시 입안에 남는 쓴맛이 강하다.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안아 주고 싶은 영혼이 많았다.

특히 ‘아피아스 제(피)’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다. 어릴 때부터 그 삶에 파랑이 끊이지 않는다. 사랑하는데도 도망가야 했다. 감추고 숨기고 무섭고 두려워 울었다.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저 사랑했을 뿐인데. 그저 사랑했던 건데 감당해야 될 슬픔과 절망이 파도처럼 거셌다.

사랑은 우리 안의 모든 가혹한 감정을 진정시킨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만큼 더욱더. 사랑은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피터, 오직 너만이 그럴 수 있었지. -88쪽

빛조차도 감히 널 사랑할 수 없어. -93쪽

피터. 끝까지 피에게 전부였던 존재. 불꽃이 되어 피의 가슴에 새겨진 유일한 사람. ‘피’라는 이름을 새겨 준 사람. 한 번의 인생에서 이런 사랑을 만났으니 피는 행복했을까. 마지막까지 도망가야 했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를 살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243쪽

사랑은 우리를 살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어렵다. 절대 쉽게 읽히지도, 쉽게 이해되지도 않는다. 가독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다. 얼마만큼 품을 수 있는가에 달렸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다. 계속 들여다보고 곱씹고 받아들이려 할수록 어려워진다. 앞으로 나가기 힘들어도 계속 내딛다 보면 끝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아직은 아니다. 피의 인생은 ‘안녕’에서 다시 시작될 테니까. 그 시작에 함께 있을 수 있어 특별한 시간이었다.

묵직한 여운을 감당할 수 있다면 손대주길. 자칫하면 불꽃이 당신 손끝으로 번질 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여우에 관한 이야기다. 여우가 어떻게 소년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그리고 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9쪽




필로소픽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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