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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ㅣ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평점 :
인생에 ‘만약’이란 시간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듯이.│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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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지우려 하다가는 더 큰 얼룩만 남게 되는 경우가 있죠. 해변의 자갈이 파도와 바람에 마모되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잘게 부서져 모래가 될 뿐이죠.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아픈 상처든 빛이 바랠 뿐입니다.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죠.”│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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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죠. 한 발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고,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보아야 또렷이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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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지.”│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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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이희영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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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마음에 들인 존재는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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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이의 부재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불안한 그늘로, 차가운 여백으로 흘러들어 괜찮다며 지내온 나날에 균열을 낸다. 잔잔하게 흐르던 일상 위에 부재의 존재가 불거지면 남겨진 이들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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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와 하제, 성진, 한민은 이내라는 존재를 잃고 서른두 살을 살아가는 중이다. 나우는 이내와 형제처럼 자란 친구사이. 두 사람 사이에 하제가 있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이 되어 이내와 하제는 연인이 된다. 친구의 여자를 마음에 품게 된 나우. 청혼을 준비하던 즈음 검은 고양이를 따라 낯선 바에 들어선다. 묘한 분위기의 바텐더가 만들어 준 칵테일을 마시고 잠들었다 깨어나니 열다섯 살의 시간으로 돌아간 나우. 이내가 살아 있는 시간으로 돌아간 나우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홀로 악전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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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타임슬립 작품과는 다르게 어떤 존재가 만들어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점이 특이하다. 무알코올 칵테일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기억이 현실이 되는 점도 신비롭다. 현실이 된 과거의 시간을 과거와는 다르게 바꾸려는 시간 여행자. 선택의 기로 끝에 숨겨진 반전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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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꾸면 이전과는 달라진 현재에 만족하며 살게 될까. 인간이 바라는 만족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를 바라면 열을 바라는 게 인간 아닌가. ‘if’는 가장 많이 생각하지만 가장 허망하고 부질없는 단어 아닐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right now’가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 인간은 흔들리며 단단해진다. 수많은 if에 흔들려도 다시 right now 할 수 있는 것도 다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나우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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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하고, 소중한 이를 더 소중히 아끼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 즈음에 다들 입틀막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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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이 아닌 열아홉에 그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열아홉의 그이는 어땠을까. 만나 보고 싶다(그때 만났으면 그때도 서서히 스며들듯 반했으려나).
++이희영 작가님 전작 다 읽어 보고 싶다. 《소금 아이》 진짜 재미있게 읽었는데 기록하지 않았더니 기억에서 희미해짐⸝⸝ʚ̴̶̷̆ ̯ʚ̴̶̷̆⸝⸝ 기록에 더 충실하자.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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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홀(@rabbithole_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