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금정연.정지돈 에세이 필름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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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책이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깝고 슬픈 이유는, 바로 이런 책들이 여전히 나오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게 웃기고 사실은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그런 글이 담겨 있는 책. 사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 나와 친분이 있고, 나의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들 몇 개는 나의 이런 팬심을 대변해준다. 이들이 전에 함께 쓴 <문학의 기쁨>에 대한 알라딘의 한줄평이다. “전 한국말 못하는데, 이 책 읽으려고 한국말 배웠습니다.”


물론 (이 책 안에도 나와있는데), 금정연의 글도, 정지돈의 글도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 싫어한다. 금정연의 책에 대한 어떤 서평중엔 “글쓰기를 너무 싫어해서, 읽는 나도 읽기가 싫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고, 정지돈의 책에 대한 어떤 서평엔 “별거 없으면서 뭔가 있는 척 한다”는 악평이 달려있다. 나는 이런 평들에 동의하기가 어렵고, 이들이 쓰는 글의 매력을 1도 음미하지 못 하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야 이렇게 미디어 이론이나 철학 이론, 그리고 예술가들의 각종 인터뷰들과 작품 인용하고, 발췌해서 새롭게 조직하고, 그러다 어느새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고, 어느 문단에선 또 글쓰기 싫다고 징징거리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개성적인 사유를 전개하고, 또 그러다 갑자기 자기 생각과 언어의 토대를 점검하고 성찰하다가, 개인적인 일화 얘기하고 그 일화를 픽션화하고,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본 거 가져다 쓰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별로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년동안 연재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묶은 이 책은, 이들의 다른 책들처럼,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독보적이다. 이들은 한국영화를 비평의 역사에 따라 줄세우지 않고, ‘비천한’ 영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한국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한국영화라는 ‘장’과 조건, 환경 안에서 살면서 그로부터 끊임없이 영향받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또 사유하게 만든다. 이들이 쓰는 ‘에세이 필름’은 한국영화에 대한 새로운 비평 혹은 영화사, 비평사의 구축을 새롭게 도전하는 글인 척하지만, 사실은 그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결국엔 ‘시작’도 안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저자들이 의도한 바든, 아니든) 그 ‘준비’ 자체가 한국영화, 그리고 영화와 함께 우리의 무의식을 이루는 물적, 정신적 토대를 새롭게 사유하게 만든다.


어떤 친구와 가끔 만나면(김민훈임), 우리는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남성성의 얼굴들을 따라하곤 한다. <내부자들>과 <프리즌>, <더 테러 라이브> 속 이경영과 <범죄와의 전쟁>과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타짜>의 김응수가 연기한 곽철용을 성대모사하고, 가끔은 <끝까지 간다>의 이선균과 <암살>과 <관상>의 이정재를 따라한다. 이데아의 복제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의 복제인 예술은 현실을 재구성하고 깎고, 또 다듬으며 제 3의 이데아가 되는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 이데아를 또 다시 반복/수행/재현하는 것이다. 이런 이데아의 반복/수행/재현은 (어쩌면) 현실에 또 다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을 받은 현실은 또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반복, 그 반복의 토대와 조건을 얼마간 사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 단 한 편의 한국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작년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이정재의 <헌트>, 변성현의 <킹메이커>를 보았고, 그래서(?) 나는 이따금 박해일의 대사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와 탕웨이의 대사 “제가 그렇게 나쁩니까?” 같은 대사들을 반복/수행/재현했고, 여전히 이정재의 “어이 관상가 양반, 거 참 이상하구만, 나는 이미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될 상이라니 말이야” 같은 대사, 그리고 이선균의 “자, 오늘의 첫번째 주문이다. 봉골레 하나, 알리오 올리오 하나” 같은 대사를 반복/수행/재현한다. 이 반복/수행/재현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무엇이 담겨있긴할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긴 이것이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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