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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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8서울도시철도에서 만든 '지하철 안전하게 이용하기'류의 광고를 보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지하철 기둥에 꽝-하고 부딪히는 남자가 등장한다. 나도 가끔 지하철역사에서 스마트 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걷다가 기둥에 부딪힐 뻔한 경험이 더러 있었기에(다행히 아직까지 내 이마와 지하철 벽, 혹은 기둥이 갑작스럽고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휴우~)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출근 길, 나는 다시 한 번 지하철 기둥에 부딪힐 뻔한 경험을 했다. 그 때 난, 『북극 허풍담』을 읽고 있었고, 작가, 요른 릴이 풀어놓은 북극 사냥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책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른 릴(Jørn Riel), 그는 어떻게 허풍담(skrøner)을 쓰게 되었나.
1931년 덴마크의 오덴세(널리 알려진 덴마크 작가인 안데르센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태어난 요른 릴은 대자연, 그 중에서도 주로 북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써온 작가 겸 탐험가다. 10대 후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북극의 매력에 빠진 요른 릴은 그곳에서 1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끝없는 낮과 끝없는 밤이 교차하는 그린란드.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땅이지만, 북극의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저 아랫 것들'이다. 단지 위도 상으로만 저 아래에 사는 것들이 아니라 삶의 가치적 측면에서도 '저 아래'에 사는 것들이라는 의미다.
혼자, 혹은 둘 셋씩 짝을 지어 광활한 대지에 흩어져 지내는 이들은 사실, 유럽에서 태어나 사냥회사에 고용되어 극지로 파견된 전문 사냥꾼들이다. 하지만,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추위와 어둠, 그리고 고독에 익숙해진터라 이제는 북극식으로 살아가는 법이 몸에 배어버렸다. 이들과 함께하는(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썰매로 몇 날 몇 일을 달려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다) 북극에서의 삶을 선택한 작가는 극지의 자연환경과 그 곳에 둥지를 튼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유머와 메세지를 찾아낸 요른 릴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적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북극 사냥꾼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책장수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가져가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그 출판업자는 이 보물같은 원고를 덥썩 물었으니 그것이 바로 요른 릴의 이야기가 북극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계기라는 말씀!
『북극 허풍담(Den kolde jomfru og andre skrøner)』
허풍담. 이는 말 그대로 '실제보다 과장을 해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요른 릴은 북극에서 본인이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이야기들에 양념을 가미해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북극 허풍담』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소개된 이 이야기들은 10권의 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작가 요른 릴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1권부터 3권까지가 이번에 번역, 출간된 것 같은데 4권부터의 출간 여부는 독자들의 반응에 달렸다고 한다(친절하게도(?) 책에는 출간 촉구 메세지를 보낼 메일 주소까지 적혀있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시리즈의 첫 권으로, '차가운 처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에는 북극에 사는 사냥꾼들과 일 년에 한 번 보급품을 배달하기 위해 북극을 방문하는 수송선을 타고 나타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단편보다는 오히려 콩트에 가까운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독자는, 겉으로 보면 고독하고 우직하고 자칫 험악해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순박하고 귀여운데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과 만나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란 없다. 북극의 사냥꾼들마저도!
일본의 오지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그린란드의 야콥스하운을 출발해 두 번의 생일을 북극의 눈보라 속에서 오직 썰매개들과 함께 보내고 알래스카의 코츠뷰에 닿은 한 탐험가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북극이라는 공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피가 돌고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따뜻한 공간으로서의 북극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우에무라 나오미의 책에도 그 척박한 땅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우에무라 나오미와 안나를 필두로 한 그의 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던지라 사냥꾼들의 이야기까지 자세히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등장하는 북극의 사냥꾼들은 마치 겉은 거칠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이 진국인 호밀빵과 닮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북극 허풍담』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은 어떠한가? 요른 릴이 그리는 사냥꾼들은 독특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리고 (특히) 긴긴 겨울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삶이 요른 릴의 언어를 거치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감정을 몰고오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가운데에서 만족을 찾고 자연을 거스르는 분수에 넘치는 짓은 하지 않으며 몇 명 되지 않는 북극의 이웃사촌들과의 관계를 유쾌하게 조율해 나가며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솔직히 첫 번째 수록된 「남동풍」을 읽을때까지만해도 '엥?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문신 예술가」 같은 이야기는 유머러스하고 「알렉산더」 같은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오스카 왕」이 중간까지는 매우 감동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다 마지막엔 호러(?)로 끝을 맺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란 없구나. 북극의 사냥꾼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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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하시겠습니까? - 꿈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
김미월.김사과.김애란.손아람.손홍규.염승숙.조해진.최진영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기획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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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젊은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그 의미가 다소 축소되어 조망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젊은 작가들의 '새로움'에 대해서 말하지만, 정작 그 새로움을 추동한 이들 세대들의 현실 감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이들 작가들은 사회나 현실과 같은 무거운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오직 지적인 언어유희와 자폐적인 내면 고백에 함몰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혹은 그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이유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빈번히 있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평가가 반복되면서 비루한 현실을 살아가는 동세대의 독자들로부터 문학이 점차 멀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읽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 관성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동세대의 현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보여준 소설들을 모았습니다."

-<기획의 말-동세대의 삶을 말하다> 中, 민족문학연구소-

포맷이 필요한 세대

나도 컴퓨터를 포맷한 적이 몇 번 있다. 기기에 문제가 있어서 더 이상 현재 상태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때, 하지만 쓰던 것을 버리고 새 컴퓨터를 사기는 힘들 때, 나는 '포맷할 것'을 결심하곤 했다. 포맷을 한다고 해서 내 낡은 컴퓨터가 지금 막 구매를 완료한 반짝반짝 빛나는 새 컴퓨터로 재탄생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던 문제 중 일부는 개선이 되니 나는 포맷을 결심할 수 밖에 없다.

김미월, 김사과, 김애란, 손아람, 손홍규, 염승숙, 조해진, 최진영. 이상 8명 작가들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포맷하시겠습니까』. 이 책에는 지금 이대로는 더 이상 안되는, '인생의 포맷'을 부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소설가 지망생(김미월, 『질문들』), 변화를 꿈꾸지만 변화하지 못하는 나(김사과, 『더 나쁜 쪽으로』), 매끄럽고 세련되게 잘 다듬어진 열 개의 손가락 같은 인생을 꿈꾸지만 현실은 검은 봉지에서 꺼낸 맥주 뚜껑을 따느라 찢어져버린 손톱과도 같은 인생(김애란, 『큐티클』) 등. 이들은 지금 발 디디고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움켜진 이들의 발목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차라리 다 포맷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공감

이 소설집에 소개된 작품들의 저자들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작가들이다. 나와는 동년배에 속하는 작가들의 손끝에서 나온 글이라 그런지 이들이 그리는 사회의 모습이나 그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상당히 익숙했다. 완전한 허구에서 시작된 소설은 없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도 내가 겪어봤음직한 사건들이요 내 주변에서 봤음직한 인물들이었다. 개인사는 물론 다르겠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적 맥락이 동일하다보니 글을 읽으며 여간 공감이 되는 게 아니었다.

김미월, 김애란, 손아람, 염승숙, 최진영

익숙한 작가도 있었고, 낯선 작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흥미로웠던 작품도 있었고 비교적 공감이 덜 가는 작품들도 있었다. 이 소설집에서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들은 김미월 작가님의 『질문들』, 김애란 작가님의 『큐티클』, 손아람 작가님의 『문학의 새로운 시대』 였고, 염승숙 작가님의 『완전한 불면』과 최진영 작가님의 『창』도 흥미로웠다.

이 중 몇 분의 작가들은 내가 이미 '흥미로운 글을 쓰는 작가' 혹은 '잘 쓰는 작가'라고 믿고 있는 분들이라서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글이 좋았다는 것이 새로울 것이 없었다(이번에도 역시나 좋았어요!). 그런데 손아람 작가님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흥미로운 작가라고나할까? 이 분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바로 여러 작가들의 소설이 포함된 소설집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인 것 같다.

불만족, 변화의 원동력

고민이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한 번쯤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다시 끼우고 싶다라든가, 다 없었던 일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나도 내가 처한 상황이 불만족스러워 우울해하며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 들러붙어 있는 고민이 있기도 하고. 하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을 느껴야 고민도 하고 고민이 있어야 개선도 있지 않겠는가. 모든 것을 다 포맷해버리고픈 삶일지라도 그런 생각 자체가 삶을, 나아가 사회를 더 좋은 상황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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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 위로하는 그림 읽기, 치유하는 삶 읽기
조이한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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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련 서적을 이미 여러 권 낸 바 있는 저자가, 다시 한 번 그림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미술사가, 조이한의 『그림, 눈물을 닦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위로하는 그림 읽기, 치유하는 삶 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큼,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첫 장을 펼쳤다.

저자는 서문에서 '작품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이나 미술사적 의미를 따지는 글이 아니라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을 끌었던 작품들을 놓고 오래 생각하면서 쓴 글들을 모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자그마한 희망과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존재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같은 글을 읽거나 같은 그림을 보고도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마련이다. 가령, 어떤 그림은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가슴 아린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칠 것 같다면, 세상에 나를 소리쳐>, <주저된다면, 사랑마저 반역할 것>, <치유할 수 없다면, 차라리 껴안아 버려>, <사는 게 곤욕이라면, 생각의 틀 자체를 바꿔봐>, 이상의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술작품들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인생이 힘들다고요? 되는 일이 없다고요? 외로워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당신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을 겪는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예요.'라는 메세지를 건네는 듯하다.

일면 아름다워보이는 세상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아름다운 세상의 한 귀퉁이에는 분명 어둠이 숨어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지니고 있는 고민과 괴로움. 이것을 극복하느냐 극복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크게 마음을 위로받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쩌면 대책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는 '괜찮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지금 일어난 일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될거야.'라는 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위로가 입발린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고,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현실적인 제언을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생채기가 난 마음을 거즈로 덮어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역할은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너는 지금 상처입은 게 맞아. 하지만 그 상처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절망에 빠지지는 말아. 용기를 내서 그 상처를 대면하면 어떨까? 왜냐면 상처를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너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까.'식의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일종의 지적이고 씩씩한 위로를 건넨다고나할까? 이런 방식의 위로는 현재의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롤랑바르트가 말했던 풍크툼(punctum)을 여러 번 언급하는데, 풍크툼이란 '오직 나에게만 섬광처럼 꽂혀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 뭔가에 찔린 상처럼 아파오는 것(20p.)'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미술 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동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도 풍크툼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솔직히 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눈물을 닦다』에 소개된 몇 몇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는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못 느끼지만 감정이 정화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적어도 저자가 내세운 이 책의 존재 이유는 충족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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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을 훔치다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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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이중섭."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도 "글쎄..난 이중섭 그림은 별로..."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 그에게는 '국민화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물론 나도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하는 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다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의 그림은 이중섭을 유명하게 만든 '소 그림'이 아니라 아이들, 혹은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며 나는 그 발가벗은 가난하지만 천진난만한 인물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뭉클하면서도 한없이 정겨운 느낌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바로 얼마 전 출간된 『이중섭을 훔치다』라는 책을 읽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나도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하기에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책은 이미 여러 권 읽었던 적이 있다. 기존에 발간된 같은 화가에 대한 책들이 그러하듯 이 책에서도 이중섭의 그림과 삶을 소개하고 있지만, 독특한 점은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몽우 조셉킴으로 알려진 이 젊은 화가는 이중섭의 그림과 삶을 훔치고 싶다고 당당히 밝힐 정도로 이중섭을 열성적으로 흠모하는 분인듯했다.

 

중학교 시절, 나는 홍콩 배우 곽부성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가 발표한 음반을 찾아 듣고 그의 인터뷰 기사를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찾아 읽어보는 것은 기본이요, 그가 소위, '사대천황' 중 한 명이라는 점에 착안해 나머지 세 명-유덕화, 장학우, 여명-의 출연작이나 음반까지도 섭렵하는 정성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 나는 곽부성으로 논문을 써도 썼을 정도로 그와 혼연일체가 되었다고나할까. 

 

누군가를 좋아하고 관심있게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마음까지도 말이다. 어린시절부터 이중섭을 좋아하고 그의 삶과 그림까지도 훔쳐내고 싶어했던 저자는 25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그간 그가 바라보고 느껴온 이중섭이라는 인물과 그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중에는 이미 세간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도 있고, 저자의 새로운 해석이 가미된 다소 생소한 이야기들도 있다. 이중섭이라는 인물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이전에 다른 책을 통해 접한 이중섭의 삶이 진실인지, 아니면 이 책을 통해 접한 그의 삶이 진실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병마와 가난과 외로움으로 삶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했던 화가, 이중섭의 삶과 어찌보면 닮은 삶을 살아온 저자가 '이것은 후배 화가가 쓰는 닿을 수 없는 저 먼 곳에 있는 한 훌륭한 선배 화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것 같았고, 그랬기 때문에 때로는 어린이의 그것같은 문장속에서도 진심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중섭의 그림과 저자, 몽우 조셉킴의 그림이 어우러진 책은 보는 즐거움도 함께 선사하고 이중섭에 대한 새로운 해석 또한 흥미롭다. 기존에 출간된 이중섭 관련 다른 도서들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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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명언 100선 - 풍요로운 삶의 지표
이케다 다이사쿠 지음, 화광신문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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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내 인생을 바꾼 한 마디>라는 제목으로 명사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고했던 적이 있다. 인터뷰를 빙자하여 평소에 만나뵙고 싶었던 분들(가령,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님, 공병호 공병호 경영연구소 대표님, 이일하 굿네이버스 대표님, 외화번역가 이미도님, 디자이너 이상봉님 등)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접한 말 중에서 현재의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한 마디는 무엇입니까?"를 물었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여기에서 경험이라 함은 직접 경험이 될 수도 있겠고 간접 경험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어로서 그 분들을 만나 짧은 시간이나마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접 경험만큼이나 큰 간접 경험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다. 마치 36색 크레파스처럼 서로 다른 빛깔의 인생을 꾸려온 그 분들의 가슴 속 인생을 바꾼 한 마디가 어느덧 나에게로 옮겨와 내 인생의 빛깔을 바꾸는 체험을 말이다.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엮어낸 『풍요로운 삶의 지표-이케다 다이사쿠 명언 100선』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다른 이의 삶과 이야기가 나의 삶에 서서히 빛을, 그리고 의미를 전달하는 경험을 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세계적인 불교단체인 국제창가학회의 회장이자 작가라고 하는데, 이 책은 저자가 그 동안 펴낸 책들에서 명언을 엄선하여 엮었다고 한다. 제목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총 100건의 명언을 소개하는 이 책은 희망의 내일로/ 인생과 사회/ 여성과 교육/ 생명과 철학/ 평화와 문화/ 현대와 세계, 이상의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에는 저자가 남긴 명언과 더불어 그에 대한 풀이 내지는 보충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혹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가슴에 와 박히는 이야기를 접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문장을 수첩이나 블로그에 적어두곤 한다(매 번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 

물론 이야기를 접하는 당시에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 지에 따라 마음에 남는 문장도 다를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독서를 통해서는 나의 관심사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평화와 문화-에서 소개된 명언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작고 가벼운 사이즈의 책 속에 한가득 담긴 무게감 있는 명언들. 언제고 다시 읽어도 그 당시의 나에게 힘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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