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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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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글 쓰는, 그 오빠가 돌아왔다
쉬이 방문하기 힘든 전세계 곳곳을 유랑하면서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기억을 남긴다. 정말이지 꿈만 같은 삶이 아닌가.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으로 내 마음을 흔들었던 김병종 화백이 그림이 있는 신앙에세이,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로 돌아왔다. <김병종의 생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민일보에 일 년여 동안 기고했던 글을 한데 모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그 동안 김병종 화백의 그림과 신앙고백 한 편 한 편을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렸던 독자들이라면 냉큼 서점으로 달려가 한 권 마련하고 볼 일이다.
 


바보 예수, 화선지에 먹과 채색, 170x110cm, 1985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이 책은 묵상의 증거이며 신앙의 고백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에 자의식이 생기기도 전에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다던 저자는 1980년대에 '바보예수'연작에 매달렸던 바 있다.
"동양화가가 뜬금없이 무슨 예수냐고 시비를 건 사람도 많았고, 신성모독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예수의 모습을 그릴 수 밖에 없게 만든 이유는 있다. 대학가엔 연일 최루탄이 난무했으며 현실은 최루탄보다도 매웠던 1980년대의 사회상을 바라보며, 저자가 떠올렸던 것은 바로 2000년 전 바람불던 유대광야를 걸어간 한 남자, 예수였다 한다.
"나는 그때 사랑, 용서, 희생 같은 언어, 저 바보 같은 단어들을 들고 선 그이(예수)를 생각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울 엄마 바보야"하고 울먹이는 것과 같은 한없는 존경과 사랑을 담은 반어적 표현으로 차용했다는 '바보 예수'. 저자는 '바보 정신'이 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알려주신 그 분의 위대한 사랑의 불길 속에 활활 타오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림과 글로써 오롯이 표현해냈다.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미술관
나의 모태신앙은 천주교이다. 나는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지는 않아도 매 식사 전에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는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솔직히 성경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평소에는 죄도 짓고 약삭빠르게 살아가면서 주일에만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변신하는 사람들을 보며 종교에 대한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그 누군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는 저자, 김병종 화백도 100%공감하는 듯 하다. 
"하늘이 우로를 내고 햇빛을 주지 않으면 식물처럼 시들어갈 인생들, 사막 같은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인생들을 위해 물과 햇빛을 주신 분에게 어찌 사무치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으랴."

기독교적인, 상당히 기독교적인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 당신이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
2장. 내가 그린 당신의 얼굴
3장.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
그리고, 4장. 당신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
작가가 "색채는 나만의 기도이고 붓질 또한 나만의 찬송입니다."라고 고백했듯, 이 책의 기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짙다. 특히 2장과 3장의 내용이 그러한데, 비기독교인이 읽으면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듯하다. 실제로 기독교인이 아닌 누군가에게 이 책 일부를 읽어주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너무 성스러워서 못 읽겠다."고 대답했을 정도로. 하지만 이 책은 제목에서도 명확히 밝혔듯 '오늘밤, 당신안에 머물고픈'이의 묵상의 기록이므로 동일한 욕구를 지닌 이들에게는 상당히 소중한 책이 될 듯하다. 이미 타겟독자를 따로 설정하고 출판한 책이겠지만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에 비해서는 대중의 고른 사랑을 받기는 힘들 듯 하다. 다만, 작가의 전작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 독자에게는 1장. 당신이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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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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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로코에 대한 진실, 혹은 오해
담배피우는 모습이 멋진 험프리 보가트와 우아한 잉그리드 버그만의 애잔한 로맨스, 그리고 주제곡, As Time Goes By가 감미로웠던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 스페인 남부의 도시, 그라나라Gradana를 관광대국 스페인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일등공신, 알함브라 궁전Alhambra, 처음 먹어보곤 밍숭맹숭했던 그 맛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데다 이름마저 맛 뺨칠 정도로 기묘해 잊을 수 없었던 쿠스쿠스, 마치 산토리니의 하얀벽에 푸른 지붕을 연상시키던 선명한 모로칸 블루의 집들,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신실한 기도를 올리고 라마단을 엄격히 지킨다던 무슬림의 나라,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밀입국 해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며 스페인 남부 사람들이 싫어하던 이들이 사는 곳,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이국적인 경험을 꿈꾸는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곳. 
내가 모로코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 혹은 오해들. 
그리고 나에게 모로코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향기를 전해 준 ’중세의 도시’ 페스Fez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부부 저널리스트의 생활밀착형 여행기, 『페스의 집(A House in Fez)』

"그게 웬 19세기적 발상이니!" 
1961년 모로코를 여행하던 젊은 호주인 부부, 메그와 헨리는 마라케시 근처의 한 야영장에서 부모만큼이나 열정적인 수전나 클라크Suzanna Clarke를 잉태한다. 당시 그들은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몇 십년이 흐른 후 모로코의 부름에 운명적으로 이끌린 그들의 딸이 모로코의 옛 수도, 페스Fez에 덜컥 집을 사버리는 사고를 저지를 줄은. 그리고 여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몇 개 있다. 하나. 수전나와 그녀의 남편, 샌디가 이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은 페스를 단 두 번 방문하고 난 후였다는 것. 둘. 그들의 집과 직업과 친구, 가족이 있는 생활의 근거지는 비행기로 26시간 거리, 다시말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호주라는 사실. 그리고 셋. 그들이 사들인 집은 잔금을 지불하자마자 바로 대들보가 내려앉을 수도 있을만큼 낡은 아랍전통가옥이었다는 점. 한껏 꿈에 부풀어 "페스에 있는 아랍전통가옥 리아드Riad를 살 거야!"라고 선언하는 그들의 면전에 "그게 웬 19세기적 발상이니!"라는 친구의 대답이 당도한 것은 어찌보면 불 보듯 뻔한 일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사고를 쳤다.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긴 26시간의 비행 끝에야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는 환상적인 접근성, 각각 호주의 신문사와 국영방송국에서 일하는 수전나와 샌디에게는 먼 타국에서 여유롭게 휴가를 즐길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고무적인 사실, 페스에서 집을 장만하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지식 전무, 도움의 손길은 고사하고 간략한 설명서나 안내서도 기대할 수 없는 축복받은 상황, 학창시절에 배운 프랑스어 몇 마디와 어디서 주워들은 다리자(모로코의 아라비아 사투리)어 몇 단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행복한 현실.... 페스에서 집을 구매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처럼 끝도 없었다. 하지만 모로코, 그 중에서도 모로코의 옛 수도인 페스에 집을 구해 전통모습 그대로 복원하겠다는 생각은 그들의 머리에서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고, 결국 그들은 사고를 치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페스에 도착해서 저 아래 메디나의 고대 성벽과 낡은 집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집은 꿈과 돈, 그리고 시간과 정열이 있는 사람이 자신들을 복구해주길 기다리며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샌디와 나는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있다는 동질감을 함께 나누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페스의 집』을 통해 페스에서 집을 사고 개·보수하기 위한 A부터 Z까지의 노하우나 조언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덮을지어다. 책은 ’방 O개에 정원이 딸린 O층짜리 집의 적정 가격은 O디르함, 매물이 많은 지역은 O구역’ 따위의 숫자가 가미된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오히려 ’모로코의 삶에 대해서는 생 초짜’인 외국인 두 명이 페스에서 집을 사고 그 집을 복구하면서 겪게되는 문화충격 혹은 충돌, 그리고 이를 헤쳐나가며 모로코와 페스를 배우고 느끼고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마음의 여정을 보여준다. 물론, 페스에 보다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게끔 돕는 소중한 정보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인샬라’와 같은.

"’신의 뜻대로’라는 뜻을 가진 ’인샬라’는 여러모로 유용한 표현이다. 신의 뜻이라면 서두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이뤄진다는 의미도 여러 가지 상황에 쓰인다. 내가 무슨 일을 하겠노라고 ’인샬라’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 분명 거기에 있다는 의미이며, 만일 방해를 받으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알라의 뜻이라는 것이다. 모로코에선 늦는다고 조급해하거나 좌절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양도계약서도 마찬가지였다. 해결될 날이 오면 해결될 거라는 말만 줄곧 들어야 했다. 인샬라."

역사면 역사, 사회면 사회, 정치면 정치, 관광이면 관광 
사실 수전나와 샌디는 저널리스트라는 그들의 직업적 특성을 십분 살려 이 책을 더욱 맛깔스럽게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전체적인 이야기의 뼈대는 이렇다. 
<모로코의 옛 수도??대를 무릅쓰고 그곳의 오래되고 낡은 전통가옥을 매입한 후 페스에 거주하는 이방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모로코인 건축가들을 고용해 페스의 집을 전통 모습 그대로 복원해 나간다. 물론 집을 복원해 나가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도 여러 번 봉착하게되나 이를 통해 페스와 모로코, 그리고 모로코인들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결론적으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전체적인 뼈대 사이사이에 모로코의 역사며 사회상에서부터 축제, 그리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로코인들의 소소한 일상 모습, 심지어 과거 모로코인들의 손길이 닿은 스페인 그라나라 여행기까지, 영양가 넘치는 튼튼한 잔뼈들이 중심뼈대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본 우리
개인적으로 정말 흥미롭게 읽고 있는 시리즈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본 우리>총서다.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취재기자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가 한반도를 따라 신혼여행까지 하게 된 독일인 부부의 기록이라든지, 백두산을 목적지로 하여 한반도를 여행했던 영국 군인들의 기록 등을 책으로 편찬한 것으로 16세기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서양의 눈에 비친 우리의 궤적을 살핌으로써 오늘 날의 한국, 한국인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우리의 과거사를 그토록 꼼꼼하게 기록하고 남겨준 것이 감사한데다, 단순히 여정을 기록한 일지라기보다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과도 같기에 푹 빠져읽던 참이었는데, 호주인 저널리스트 부부의 눈으로 본 페스와 모로코의 이야기, 『페스의 집』을 통해 나는 모로코판 <그들이 본 우리>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수전나와 샌디가 모로코인들을 자신들과 대등한 눈높이에서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을 보이는 점은 분명하다. 허나 ’서구화’가 ’현대화’, 혹은 ’더 나은 것’과 동일한 의미로까지 이해되는 세상이기에 수전나와 샌디의 어투나 태도에서 짐짓 젠체하는 부분이 전혀 없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던 게 사실이고.

모로코인들에게, 페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우리 모두에게
나중에 1층 객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페스 메디나의 미래를 낙관하느냐고 라치드에게 묻자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랫동안 걱정하는 문제입니다. 메디나는 20세기 초까지는 조화롭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변화의 물결이 너무 거셉니다. 이 도시의 포용수준을 넘어섰죠." 
그는 계속해서 메디나를 구하려는 피상적인 접근의 위험성을 말했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위험했다. 
"정확히 맥을 잡고 구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외국인들이 집을 구매하는 새로운 유행입니다. 외국인들이 와서 집을 복원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집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방식 때문에 우려하는 겁니다. 메디나는 그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요.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아라비안나이트에 대한 환상을 가진 동양주의자들은 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전통적인 것’과 ’전통을 지켜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 페스의 생활밀착형 여행기, 『페스의 집』은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사라져가는 것들’이나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의문까지 자연스레 던지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수전나와 샌디의 ’사고’는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애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청나고 유쾌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지만, 몇 십년, 아니, 몇 백년, 몇 천년이 지난 후에 그들의 ’사고’는 과연 무엇으로 남게 될까-. 
가볍게 웃으며 읽을 수 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까지도 아련하게 떠도는 생각의 울림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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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엔젤리너스
이명희 지음 / 네오휴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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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의 <고향>중에서-


Homo Angelinus호모 엔젤리너스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가진 것을 나눈 당신이 천사라고 한다면 이 책에는 11명의 천사가 등장한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관심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해본다. 예전엔 "나는 OO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내가 OOO를 통해 후원하는 OOO는..."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는데 저걸 왜 말하고 다니나.'라며 쯧쯧쯧-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당연히 나 스스로도 내가 하는 소위, 자원봉사나 기부에 대해 구태여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따라서 "나와 함께 OOO에 자원봉사 하러 가자."라며 주변 사람들을 그 일에 끌어들일 일도 없었다. 당신도 원한다면 조용히 혼자 도우시게. 나도 그러할테니-. 그러니까 각개전투를 선호했다고나할까?

아직도 내가 하는 자원봉사나 기부에 대해 언급하는 게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봉사든 기부든 그 기저에는 '자기 만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나는 이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야.'라는 자긍심을 느낄 수도 있을테고,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불편한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라는 바람과
타인을 도움으로써 만끽하게 되는 순수한 행복감도 조금쯤은 기대하고 있을테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성인聖人처럼 아무런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도와야 하니까'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도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한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맛있는 음식 한 접시면 날아갈 단돈 삼 만원으로 저 멀리 이국땅에 있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어차피 하릴없이 보낼 시간에 근처의 보육원을 찾아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영어로 읽고 쓸 수 있겠다 집에 인터넷 사용 가능한 컴퓨터도 있겠다 해외로 입양보낸 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어느 아버지의 편지를 번역할 수도 있을 테다.
어차피 쓸 돈, 어차피 남아돌 시간과 에너지, 어차피 있는 능력. 이들을 사용해 한다는 것이 구타나 도둑질도 아니고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 기부나 봉사라면, 조금쯤은 '자기 만족'에 근거한 행위라해도 그게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자신이 가진 것을 그 누구와도 나누려하지 않는 사람보다야 더 나은 인간 아닐까. 게다가 자신의 봉사와 기부활동을 보고 또 다른 누구가가 이에 동참할 잠정적인 기회도 제공하니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랄 수 있겠다.

저자, 이명희 씨는 말한다.
나처럼 나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나 살기도 바쁜데 나눌 게 뭐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돈 좀 모으고 나서 나중에 돕자'며,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들부터 손을 잡고 싶었다.라고.
그리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그 태양을 내가 볼지는 모를 일이다. 내일 도울 그 사람들이 내일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봉사와 기부의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을 위해 도서 낭독 자원봉사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진경씨,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현실화시켜주는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재단의 손병옥 국제본부 이사,
아직은 낯설고 조금쯤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어령 선생과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시각장애인들의 읽을 권리, 배울 권리, 공부할 권리를 위해 부족한 자원으로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바자회와 공연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과 결식아동들을 돕는 가수 홍서범씨,
공연 수익금 대부분을 결식아동과 비인기 스포츠 종목 등에 후원하고 향후 비인기 종목 선수를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가수, 박상민씨,
헌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명쾌하게 밝혀준 박규은 대한적십자 혈액관리본부장,
장애인 공동체 시골교회를 개척해 그들과 함께 꿀과 된장을 만들고 바른 먹거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임락경 목사,
한국표 '나눔'의 대명사인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눔운동을 전개중인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씨,
공익을 위해 무언가 하나쯤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료 인권소송을 하고 있는 변호사, 한기찬씨.
이상의 11명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된 11명의 천사들이다.
본인의 입으로 "나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소."라고 밝힌 것이든, 혹은 타인의 질문에 "실은 제가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든, 여하튼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열 한 명의 나눔 스토리를 통해 현재 내가 가진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깨닫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인터뷰 기사 형식의 글이라 부담없이 읽기에 좋고 다 읽고 난 후의 깨달음도 크니 두 배로 좋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소개된 열한 명의 인물들과 그들의 활동을 접하길,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는 일에 동참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 이명희가 만난 11명의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이자 특징을 소개한다. 책을 읽어보면 이해 되겠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 시간 관념이 철저하다.
■ 프로세스가 명쾌하다.
■ 완벽주의자다.
■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 친절하다.
■ 이성적이나 감성적이다.
■ 사고방식이 긍정적이다.
■ 유머가 있다.
■ 창조적이다.
■ 끊임없이 노력한다.
■ 될 때까지 한다.
■ 말씨가 부드러우나 강한 카리스마가 있다.
■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솔직하다.
■ 눈치를 보지 않는다.
■ 건강관리를 잘 한다(또는 잘하는 것 같다).
■ 구체적인 꿈이 있다.
■ '인문학적 정신'을 강조한다.
■ 나이와 상관없는 순수와 열정이 있다.
그리고
■ 자기 자랑을 해도 밉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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