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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엔젤리너스
이명희 지음 / 네오휴먼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의 <고향>중에서-
Homo Angelinus호모 엔젤리너스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가진 것을 나눈 당신이 천사라고 한다면 이 책에는 11명의 천사가 등장한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관심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해본다. 예전엔 "나는 OO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내가 OOO를 통해 후원하는 OOO는..."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는데 저걸 왜 말하고 다니나.'라며 쯧쯧쯧- 탐탁치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당연히 나 스스로도 내가 하는 소위, 자원봉사나 기부에 대해 구태여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따라서 "나와 함께 OOO에 자원봉사 하러 가자."라며 주변 사람들을 그 일에 끌어들일 일도 없었다. 당신도 원한다면 조용히 혼자 도우시게. 나도 그러할테니-. 그러니까 각개전투를 선호했다고나할까?
아직도 내가 하는 자원봉사나 기부에 대해 언급하는 게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봉사든 기부든 그 기저에는 '자기 만족'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타인을 도움으로써 '나는 이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야.'라는 자긍심을 느낄 수도 있을테고,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불편한 마음의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나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라는 바람과
타인을 도움으로써 만끽하게 되는 순수한 행복감도 조금쯤은 기대하고 있을테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성인聖人처럼 아무런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도와야 하니까'라는 마음 하나만으로 도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다한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맛있는 음식 한 접시면 날아갈 단돈 삼 만원으로 저 멀리 이국땅에 있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어차피 하릴없이 보낼 시간에 근처의 보육원을 찾아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영어로 읽고 쓸 수 있겠다 집에 인터넷 사용 가능한 컴퓨터도 있겠다 해외로 입양보낸 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어느 아버지의 편지를 번역할 수도 있을 테다.
어차피 쓸 돈, 어차피 남아돌 시간과 에너지, 어차피 있는 능력. 이들을 사용해 한다는 것이 구타나 도둑질도 아니고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 기부나 봉사라면, 조금쯤은 '자기 만족'에 근거한 행위라해도 그게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어쨌든 자신이 가진 것을 그 누구와도 나누려하지 않는 사람보다야 더 나은 인간 아닐까. 게다가 자신의 봉사와 기부활동을 보고 또 다른 누구가가 이에 동참할 잠정적인 기회도 제공하니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랄 수 있겠다.
저자, 이명희 씨는 말한다.
나처럼 나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나 살기도 바쁜데 나눌 게 뭐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돈 좀 모으고 나서 나중에 돕자'며, 지금이 아닌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들부터 손을 잡고 싶었다.라고.
그리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그 태양을 내가 볼지는 모를 일이다. 내일 도울 그 사람들이 내일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봉사와 기부의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을 위해 도서 낭독 자원봉사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진경씨,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현실화시켜주는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 재단의 손병옥 국제본부 이사,
아직은 낯설고 조금쯤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어령 선생과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시각장애인들의 읽을 권리, 배울 권리, 공부할 권리를 위해 부족한 자원으로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바자회와 공연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과 결식아동들을 돕는 가수 홍서범씨,
공연 수익금 대부분을 결식아동과 비인기 스포츠 종목 등에 후원하고 향후 비인기 종목 선수를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가수, 박상민씨,
헌혈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명쾌하게 밝혀준 박규은 대한적십자 혈액관리본부장,
장애인 공동체 시골교회를 개척해 그들과 함께 꿀과 된장을 만들고 바른 먹거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임락경 목사,
한국표 '나눔'의 대명사인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눔운동을 전개중인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씨,
공익을 위해 무언가 하나쯤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료 인권소송을 하고 있는 변호사, 한기찬씨.
이상의 11명이 바로 이 책에서 소개된 11명의 천사들이다.
본인의 입으로 "나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소."라고 밝힌 것이든, 혹은 타인의 질문에 "실은 제가 이러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든, 여하튼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열 한 명의 나눔 스토리를 통해 현재 내가 가진 자원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깨닫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인터뷰 기사 형식의 글이라 부담없이 읽기에 좋고 다 읽고 난 후의 깨달음도 크니 두 배로 좋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소개된 열한 명의 인물들과 그들의 활동을 접하길, 그리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누는 일에 동참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저자 이명희가 만난 11명의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이자 특징을 소개한다. 책을 읽어보면 이해 되겠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 시간 관념이 철저하다.
■ 프로세스가 명쾌하다.
■ 완벽주의자다.
■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 친절하다.
■ 이성적이나 감성적이다.
■ 사고방식이 긍정적이다.
■ 유머가 있다.
■ 창조적이다.
■ 끊임없이 노력한다.
■ 될 때까지 한다.
■ 말씨가 부드러우나 강한 카리스마가 있다.
■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솔직하다.
■ 눈치를 보지 않는다.
■ 건강관리를 잘 한다(또는 잘하는 것 같다).
■ 구체적인 꿈이 있다.
■ '인문학적 정신'을 강조한다.
■ 나이와 상관없는 순수와 열정이 있다.
그리고
■ 자기 자랑을 해도 밉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