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 Still Walk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가끔 가족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지금 내 얘기 듣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가족만큼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는 집단을 본 적이 없다. 이곳은 가족이기 때문에 배려가 없다. 가족이기 때문이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화가 지속되기가 힘들다.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다. 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어느 순간 폭발 할 수 밖에 없다. 그건 대개 몇 년, 혹은 몇 십년 동안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재생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은 원래 그런 존재다. 똑같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하는 집단. 
 

여기 일본의 평범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걸어도 걸어도'라고 했고, 포스터는 싱그럽기 그지 없다. 녹차 맛처럼 청량한 가족을 보여주려는가보다. 지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녹차의 청량함보다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들은 녹차의 쌉싸름한, 떪은 끝 맛을 더 닮았다. 
 

아버지는 두 아들 중 한명이라도 자신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아들이 없었다. 그래도 장남에게 거는 기대는 남달랐다. 그런 장남이 자신보다 먼저 죽었다. 둘째 아들은 총명한 장남 대신에 자신이 죽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나 둘째 아들과 어긋났고, 아들은 집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그렇게 1년에 1번정도만 보면 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아들까지 딸린 과부와 결혼을 했다. 장남의 기일을 맞아 집으로 가는 둘째 아들의 가족의 심정은 복잡하다. 부모님의 불평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 둘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까지 모두 모이자 고즈넉하기만 했던 시골 집에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어머니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음식을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음식을 하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고슬고슬한 밥,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고기찜, 바삭하게 튀겨지는 옥수수 튀짐 등. 스크린으로 한껏 차려진 음식의 냄새가 날것처럼 장면이 생생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집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은 뗄 수 없는 상관관계인 듯 하다. 정성을 들여서 해 놓는 음식이 없다면 집은 사람들로 꽉 차 있어도 허전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해보이지만 가족들의 속 마음은 모두 편칠 않다. 하고 싶지만 묻어두는 말들이 쌓여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진심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그 중에서도 시종일관 온화하고 자상해보이는 어머니의 마음이 가장 나를 놀라게 했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면서, 갈아입을 속옷과 수건을 준비하면서, 덮밥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한 마디씩 말을 내뱉는데 식구들은 모두 마음이 서늘해진다. 엄마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들은 다음 날 버스를 타고 집을 떠나오면서 이번에 왔으니 이번 설은 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루 동안 기억나지 않았던 스모 선수의 이름이 생각난다. (어머니와 함께 끝까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궁금해 했던 스모선수) 그리고 아들은 말한다. "꼭 이렇게 한 발 늦는단 말이야."
그렇다. 아들의 말 처럼 아들이 채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아들은 전과 같이 1년에 한번씩 집을 찾아 부모님의 묘를 찾는다. 
 영화는 어떤 해결책도 보여주지 않았다. 상황이 마무리 된다거나, 변화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나는 그 결말이 너무 좋았다.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워보였기 때문이다. 영화라고 해서 아들이 마지막에 부모님과 극적으로 화해한다거나, 마음문을 열고 우리 모두 행복해요. 라는 미소를 짓고 영화가 끝났다면 마음이 꽤 씁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모든 가족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끝났다.
걸어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닿기 힘든 것이 가족의 마음이다. 그 마음 길이 너무 복잡하고 때로는 험난해서 우리는 도중에 포기하기도 하고, 다른 길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그 길로 돌아가고 그 길이 그래도 가장 편안했노라고 추억하게 될 것이다. 결국, 마음이 아프지만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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