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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ㅣ 작가정신 소설향 6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 아주머니가 남자 방에 대고 악쓰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 달에도 방세를 안 내면 아주 나갈 작정인지 알겄소. 꼭두 새벽이었다. 남자는 방안에서 옴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는 앞에서 아주머니는 침을 발라 가며 꼼꼼히 돈을 세어본다. 꼭 십사만원이다. 이모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모 지갑에서 천 원씩, 이천원씩, 어떤 때는 몇 백원씩 표 안나게 훔치고 있다는 것을. 그 돈은 내가 이곳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모은 돈이다. 그 돈으로 작은 책상을 사고 싶었다. 책상을 사고도 남을 돈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가 이 집을 떠나는 걸 원치 않는다. 그 남자를 잃고 싶지 않다.
오래 전에 적어두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다시 읽어봐도 마음이 미칠 것 같다. 저 마음이 뭔지 다 안다고는 감히 저 주인공에게 미안해서 말을 못하겠다. 조금 알겠다. 조금만 알아도 그 막막함이, 그를 잃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조경란은 하나의 장면을 통해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렬하게 그 여자의 바람을, 욕망을, 외로움을 표현했다. '그 남자를 잃고 싶지 않다.' 라는 부분에서는 내 호주머니까지라고 털어서 그 여자를 돕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