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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왜 소녀의 욕망은 절망이 되었을까
초록색과 빨간색이 강렬하게 대조되는 표지부터 참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 누가 인챈티드 존스의 눈을 가렸을까. 어쩌면 인챈티드 스스로 눈을 감은 걸까?그럴지도. 왜 인챈티드의 욕망은 절망이 되어야 했을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코리? 음반 회사 관계자들? 인챈티드의 부모? 어쩌면 모두에게.
가스 라이팅과 그루밍 성범죄
이 책의 문제 의식은 분명하다. 가스 라이팅과 그루밍 성범죄. 하지만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게 이 책의 강점이다. 치밀하게, 섬세하게, 통렬하게 핵심 문제를 눈앞에 펼쳐 놓으면서 직선으로 해결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 또 다른 겹겹의 문제들을 함께 꺼내 놓는다. 인종 차별, 보호주의, 자본주의 등.
안전하게 욕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어른의 책임
코리가 아니라 인챈티드에게 "도움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던 승무원의 모습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그게 '어른'이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 아닐까.
무조건 넌 도움이 필요하지!라고 단정하지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외면하지도 않고 정중하게 도움이 필요한지 묻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 그게 아이들이 안전하게 욕망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인챈티드는 엄마가 보고 싶지만 엄마한테 어린아이 취급을 받을까봐, 엄마가 걱정할까봐 선뜻 연락하지 못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어린애'로만 보거나 이미 다 큰 '어른'으로 보는 것, 둘 다 부적절하다. 아이들은 '자라나는 중'이다. 성장하는 존재에게 자유롭게 욕망하고 선택하고 실패하는 경험은 너무나 소중하다. 그 소중한 기회를 어른이 박탈해서도 침해해서도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미리 문제를 막아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지지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챈티드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
자기 목소리로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준 멋진 할머니,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 준 승무원,
따듯하게 품어 준 부모님과 동생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차분히,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