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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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고유한 언어를 찾아 주는 언어 치료사


이 책은 김지호 언어 치료사의 수업 일지와 아이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함께 묶은 책이다. 언어 치료에 관심이 없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아니더라도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너무 많은 말들 속에서 질식해 가는 사람들에게 고유한 언어로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귀한 책이니까.


김지호 치료사와 아이들이 단어 하나를 배우고 말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그 시간을 잠시나마 상상해 봤다. 처음엔 너무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지 않을까. 단어 하나 배운다고 뭐가 많이 달라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생각해 본다. 수많은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것보다 꼭 필요한 단어 하나를 알맞게 사용하는 게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서는, 고유한 언어로 소통하는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중요하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진심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치료사


어른들의 세계는 늘 바쁘다. 오늘도 사람들은 수천 마디의 말을 하고 또 그만큼의 말을 듣는다. 우리가 겨우 한마디의 말을 나누는 동안에도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너는 전혀 다른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너와 함께 수업을 하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나 역시 잠시 너의 세계에 속해 있었던 거라고 말이야.


희아야, 지구는 빙글빙글 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고양이 한 마리도 절대 지구 밖으로 떨어지지 않아. 우리를 붙들고 있는 중력은 위대해. 왜 이런 말을 네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 그리고 희아야, 우주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별들은 소통하는 법을 몰라. 서로를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_64쪽


김지호 치료사가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김지호 치료사처럼 따스한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수천 마디의 말을 하고 들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피상적인 관계와 과잉 소통때문에 지쳐버린 나에게 김지호 치료사와 아이들의 이야기는 별나라 이야기 같았다.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그 시간과 노력 자체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아무 말이나 막 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그 말 속에 담긴, 내 눈앞에 있는 고유한 존재의 마음을 듣는 힘을 키우고 싶어졌다.


말없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해. 역설적이게도 그게 우리가 낯선 이들과 끊임없이 말과 글을 나누는 이유란다. 이렇게 너를 기억하며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야. 우리는 서로 어떻게든 이어져 있단다. 그러니 외로워 마, 알겠지? _114


말 없이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낯선 이들과 만나고 이야기 해야 한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 사는 아이들도, 언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버티고 있는 나도 더 많은 언어,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찾기 위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에서의 소통


이 책을 읽고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생각해 봤다. 나는 언어가 소통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비언어적 소통은 언어적 소통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언어를 통해서만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더 정확하고 멋진 언어를 찾고 싶었다. 내가 틀렸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언어가 아니라 소통이,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그 진심이 전부다. 언어는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드러날 수도 있고 숨겨질 수도 있다. 내 세상에서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다. 상대를 향한 진심, 서로 통하고 싶은, 내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싶은 그 진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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