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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바지
마거릿 버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주요 문제 의식은, 과학 중에서도 하드 과학(hard science)의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물리학에서는 왜 유독 여성들이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그에 대한 저자의 가설은, 물리학이 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남성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자는 수리물리학을 통해 우주를 탐구한다는 초월성을 추구하는 유사 종교적 사제의 냄새를 물씬 뿌려대며 여성들이 물리학계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여성들의 경전 읽기와 문자 교육, 가르침을 막았던 전통적인 중세 서구 기독교 사제 집단들과 같이 근대와 현대의 남성 물리학자들 역시 종교가 사적인 것으로 전락해 모든 초월성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세속의 시기에 오직 수리물리학자들 자신들만이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초월성을 추구한다는 신비로운 사제의 이미지를 은연중에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했고, 그러는 와중에 자연스레 여성들의 물리학 진출을 적극적으로
배제해왔다는 것이다.
최소한 각 학문별 여성의 점유율이라는 통계적 수치를 놓고 볼 때, 저자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만 하더라도 수학, 생물학, 화학 등과 같은 물리학보다는 조금 '덜 하드'한 과학분야에서는 여성들의 연구직 종사 비율이 30%를 훨씬 웃도는 데 반해 유독 물리학에서는 여성들의 연구직 종사 비율이 10%에도 못 미친다고 하니..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가설적 주장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주장을 반복만 할 뿐,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최소한 두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뉴턴 역학을 위시한 서구 근대 과학 성립기에 서구 기독교 종교 집단은 마술사들의 마술적 유기체론에 반대하기 위하여 기계론적 수리물리학의 세계관을 적극 육성해주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의 어느 대학도 아무리 훌륭한 여성에 대해서도 물리학 정교수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은, 수학적 여성들이 물리학계에 더 많이 진출하여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 정립의 이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질병 등과 같은 당장 시급한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을 놔두고 추상적 수학 유희인 '만물의 이론(TOE)' 연구비로 우선 세금을 지출하는 잘못된 점을 시정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예는 너무 논리의 비약이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