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저자 박노자 교수는 아웃사이더에 기고하는 대표적인 좌파 논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저자 허동현 교수는 대중적으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파 논객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인터넷 신문인 프레시안에서 이미 꽤 오랫동안 인기리에 시리즈로 연재되었다. 프레시안에서는 제목만 보고 읽지 않은 채 지나쳤던 두 저자의 논쟁적 시리즈 글들이 이렇게 흥미로왔을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책은 활자나 종이질 모두 꽤 깔끔하니 좋다. 글 중간중간에 나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사진이나 중요한 문서 등과 같은 관련 자료를 거의 매 페이지마다 제시해주어,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물을 직접 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서와 다른 지적 흥분을 누릴 수 있기까지 한다. 총 11개의 논쟁적 서신 형식의 글들과 1개의 대담, 그리고 부록-원전읽기로 책이 이루어져 있는데, 논쟁적 서신 형식의 글들에서는 첫페이지에 해당 논제에 대해 간략하게 포괄적으로 해제를 곁들임으로써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 더욱 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두 저자의 온라인 서신 논쟁으로 출발한 일련의 서신 형식의 글들이 이렇게 이 책으로 활자 매체로 인쇄되어 독자에게 제시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한국을 둘러싼 국제적 형세가 19세기말~20세기초 한반도 당시의 국제관계 형세와 매우 비슷하며, 구한말 한반도 지식인들의 시행착오로부터 현재의 우리가 교훈을 얻어 지혜롭게 처신하지 않는 한 현재의 한국인들 역시 구한말과 같이 외세에 이용당하는 화를 입게 될 것이라는 데에 저자인 두 역사학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을 한국 근대사에 생경한
일반 독자들이 공유하여 같이 고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그 서신 글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봉건적 질서가 다스리고 있었던 구한말 한반도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근대화 달성을 위해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행동했으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험난했던 제국주의적 국제 질서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우리는 어떠한 근대화를 추진하여 완성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를 보이는 두 학자의 논쟁이 전개된다. 여기서 좌파라 함은 인간의 중요한 생활들을 자본주의적 시장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고 민주주의적 지배가 회복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적 지향성을 말하고, 우파라 함은 집단의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이익이나 권리가 침해받는 전체주의를 반대하고 개인의 권리를 우선하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집단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정치적 지향성을 말한다.

두 저자의 공통점은 개인의 권익을 충분히 고려해주는 '인간적'인 근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단, 박노자 교수는 그 '인간적인 근대화'가 서구화나 자본주의적 세계화라는 현재의 대세에서 탈피한 새로운 민주적 사회주의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닐까 하고 나는 그의 입장을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허동현 교수는 모든 근대화는 초기 시작 당시에는 '非인간적'인 모습을 불가피하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약육강식의 정글 질서가 지배하던 20세기 초 제국주의적 국제 질서하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약소국의 정치인들은 전체주의적-국가 일방주의적 개발독재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유혹에 빠지기가 너무 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근대화 100년의 역사에는 자발적 근대화 노력과 좋은 자산이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유익한 자발적 근대화 유산을 되살려 '인간적' 근대화 개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박노자 교수는 좌파적 시각에서 그동안 민족주의-전체주의적 우파가 '식민사관극복'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배해왔던 한국 사학계가 놓쳤던 여러 가지 다른 참신한 역사 해석의 시각들을 제시해준다. 반면 허동현 교수는 당시 역사적 정황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좀더 현실 설명력이 높은 다른 해석이 무엇인지 제시해준다. 이땅의 근대화에 일말이라도 관심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기초적인 역사지식이라도 섭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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