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홍성식은 용감하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저자 홍성식의 친구 양신규skyang의 말을 한 번 인용해보자: '국제 학문계에서는 '부도난 어음보다도 못한' 서울대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캐나타 토론토 대학의 교수자리에 도전해서, 학계의 보증수표를 뽐내는 아이비리그 출신들과 경쟁해서 이기고 이를 따냈다.' 남들이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리는 일을 홍성식은 용감하게 돌진해서 기어이 일을 벌이고 마는 성격인가 보다. 결과가 좋지 못하여 창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그에게 별로 크게 작용하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성격이 결국 그를 '잡종'식 글쓰기와 생각하기로 이끌었지 싶다. 그러나 용기가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다. 이 책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수준의 글들을 과감하게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 용기가 새삼 놀랍다. 책 표지에 써있는 작은 부제목인 '홍성욱 통신 에세이'처럼 이 책은 인터넷이나 PC통신 커뮤니티 싸이버 공간에서 통신 친구들과 홍성욱이 나누었던 글들을 주제별로 모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함이란다. 벼라별 내용과 수준의 글들이 '수필'이니 '에세이'이니 하는 식으로 출판될 수는 있다. 더구나 홍세화나 유시민씨처럼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꽤 괜찮은 질의 단행본을 출간해서 그 신문을 읽지 못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재미와 깨달음'을 주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국내 대학 박사 학위만으로 토론토 대학 정교수 자리 획득'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저자의 개인적 성공 이야기를 선전 문구로 마구 흔들어내면서 내놓을 책의 수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홍성욱의 '잡종~ 문화~'가 홍세화나 유시민의 칼럼 모음 책보다 그 질이 떨어지게 된 원인은 원래의 글이 실렸던 매체의 차이와 문화에 대한 저자 개인적인 자질의 차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고문이 공개적으로 읽혀지는 신문지면에 쓰는 글보다는 친한 몇 사람만이 읽게 되는 통신 공간상에서 쓰는 글이 정제됨과 반성을 통한 깊이 있는 분석이 떨어지기 쉽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저자가 신문지면에 글 쓰는 것만큼 공들여서 통신 공간상에 쓴 글이었다면, 그런데도 글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그렇다면 이는 순전히 저자의 자질 때문이리라.이 책은 '잡종'식 글쓰기가 '순종'식 글쓰기와 어떻게 원리적으로 다르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실제 글쓰기에 적용할 때 효과적인 글을 쓰기 위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단순히 저자인 홍성욱이 대학 학부 시절에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 갖가지 분야를 수박겉핥기 식으로 독서하며 글썼던 경험을 되살려 예전 친구들과 영어권에서 오랫만에 뜨겁게 한국어로 토론한 내용을 떡하니 독자에게 들이밀며 보여줄 뿐이다. 그것이 잡종식으로 문화읽기를 적용한 구체적인 예라면서.. 그러나 읽는 독자로서는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정말로 '대학 학부 때 마음만 뜨거워서' 덤벙대며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에 바쁜 그런 수준이라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