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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ㅣ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평점 :

"러너" 시리즈를 써내 엄청난 성공을 거둔 후, 외딴 거처에 은둔한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노작가 존 로스스타인. 여전히 매일매일 강박적으로 작품을 쓰지만, 이를 발표하는 일도, 공개하는 일도 없고,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도 차곡차곡 집 안 금고에 보관하기만 할 뿐, 조용하고 외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이 돈과 미공개 작품을 노린 강도가 찾아오면서 자그마치 삼십여 년에 걸친 집착과 광기, 작가에 대한 비뚤어진 애정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빌 호지스 3부작"을 소위 스티븐 킹의 "탐정 추리소설 시리즈"라고 하지만, 글쎄요, 솔직히 일반적인 "추리" 소설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인의 범죄 행각과 이후의 행적은 첫 장부터 상세히 묘사되고, 우연찮게 이 범죄에 얽혀드는 아이는 대활약을 하고, 이제는 심장 박동 조율기까지 차고 있지만 적절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한 덕분에 "미스터 메르세데스" 당시보다는 조금 더 건강해진 빌 호지스 아저씨는 이리저리 동분서주하긴 하지만 딱히 사건 해결에 크게 기여하지는 않습니다.
이렇듯 미스테리는 사실상 거의 찾을 수 없는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스티븐 킹의 이야기답게 스릴과 호러는 그득그득 넘치고도 남습니다.
가장 감탄스러웠던 부분은 앞선 "미스터 메르세데스"와의 연결 고리였습니다. 탐정 연작 소설이 늘 그렇듯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의뢰인이 우리의 주인공을 찾아오지만, 그 새로운 요소들의 상당 부분은 모두 전편의 그 끔찍했던 메르세데스 대학살 사건이 필연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며, 역시 그 전작에서의 인연으로 빌 호지스가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역시 처음부터 모든 연작의 구상을 끝내 놓고 집필을 시작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솔직히 스티븐 킹 선생님이라면, 오히려 그랬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요. 혹자는 로스스타인의 "러너" 시리즈 역시 따로 써 두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러너"의 발췌본이 더 많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작품 내에 그다지 많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리처드 바크먼 때처럼 예명으로 출간하시는 건 아닐까… 괜히 기대해 봅니다.)
스티븐 킹은 200여 편의 단편 소설은 제외해 두고도, 54편의 장편을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캐리"가 1974년에 나왔으니, 43년 동안 매년 한 편 이상의 장편이 출간되었겠죠. 단편집도 쉬는 편이 없으니, 해마다 두세 권씩은 선생님 작품을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이천 단어씩 일정하게 글을 쓰신다고 하는데… 사실 이번 작품 속 "은둔한 노작가"의 모습은 평행 세계에서 스티븐 킹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 - 작중 모리스의 어머니 애니타의 말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자 (조지 R. R. 마틴의 행보와 비교해 보면 더욱 돋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작가로서 이야기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계신 선생님이, '혹시 내가 독자들의 애정에 등 떠밀려 계속해서 억지로 책을 출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은둔 생활을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와 같은 짓궂은 상상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비춘 존 로스스타인을 창조하자,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이 바로 그곳에서부터 전력 질주를 시작한 결과물이 바로 이런 유려한 작품이 된 것은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늘 그렇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또 한 편의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생생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손에 잡힐 듯 날뛰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삶이, 세상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그들의 앞에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연적인 사건들이 펼쳐져서 만들어지는 스릴의 대향연.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작품을 모두 읽고 나면, 시리즈의 제3부를 예고하는 묘한 복선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렇게 스티븐 킹 선생님의 필력이 여전하다는 것이, 그리고 이 시리즈에 아직 한 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역시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까요.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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