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비밀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브리지트 맥더모트 지음, 권영진 옮김 / 예경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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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상형문자의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 문자와 한자를 이야기한다.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설명 중 한자와 비교해 볼 만한 내용 몇 가지가 눈에 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cois Chanpollion)은 로제타석에 새겨진 세 가지 문자를 비교하여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 비밀은 바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인 동시에 소리를 나타낸다(p.11)”는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학자들은 상형문자는 직접적으로 의미만을 나타낸다고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집트 문자가 사물의 형태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데, 이 자명성이 오히려 사람들이 사유를 전환해 볼 기회를 박탈했던 것 같다. 이것은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에서 인성구의(因聲求義 : 소리를 통해 의미를 파악한다)를 통해 경전 연구에 혁명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고증학자들은 어떤 글자들이 문자의 의미[字義]나 형태[字形] 상의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다른 글자를 대신하여 쓰이는 현상, 즉 가차(假借 : 거짓으로 빌려 쓴다)의 원리를 규명하였다. 가차는 소리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근거하여 한 글자가 다른 글자를 대신하여 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害)와 갈(曷)은 고대에는 음이 동일하였기 때문에 서로 대신하여 쓰곤 했다. 따라서 고대 전적에서 갈(曷) 대신 쓰인 해(害)는 ‘왜’라는 뜻의 의문사로 해석해야 한다. 이 원리를 모르면 ‘해치다’라는 해(害)의 뜻에 얽매어 억지 해석을 하게 된다.

 

  글자가 만들어진 단계[造字]와 이것이 쓰이는 단계[用字]를 구분하지 않은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다. 이집트 문자나 상형(象形 : 사물의 형태를 본떠 글자를 만드는 것)의 원리로 만들어진 한자는 분명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쓰이는 단계나 좀더 복합적인 단어를 구성해 가는 단계에서 일부의 글자들은 단지 소리의 표기 수단, 즉 발음기호로만 사용되었다. 이집트어의 24개의 기본 알파벳(pp.22-23)이 그러하며 형성(形聲 :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과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이 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원리)의 원리로 구성된 한자의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聲部]이 그러하다. 그리고 한자의 쓰임에서 가차는 글자 전체가 소리의 유사성이나 동일성에 근거해 다른 글자 대신 쓰인다. 일부의 한자나 이집트문자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는 상형문자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이 가정을 좀더 복합적인 글자나 실제의 쓰임에까지 밀고 나간다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샹폴리옹도 문자 자체가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가 밝혀낸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문자가 한 단어가 아니고 새로운 단어를 구성하는 발음기호의 일부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걸상을 형상화한 ⃞은 기본 알파벳인 24개의 단자음 중 하나로 [p]음의 발음기호이다. 이런 발음기호 몇 개가 모여서 하나의 단어를 형성하게 된다. 다만 이집트어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고 자음만을 표기한다. 형성(形聲)의 원리로 이루어진 한자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의 글자는 원래 독립적인 한 글자이다. 예를 들어, 상(像)자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은 상(象)이고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은 인(人 : 사람)이다. 코끼리의 모습을 본뜬 상(象)자는 본래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人)과 결합할 때에는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발음기호로만 쓰인다.

 

  이집트문자에서 특이한 것 중 하나는 한정사의 용법이다. 이들도 본래 기본 알파벳에 쓰이는 글자들과 마찬가지로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발음기호로 쓰이지 않고 단어의 의미를 한정하는 기능을 한다. 한정사들은 모양을 본뜬 사물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턱수염이 있는 인물이 앉아 있는 형상은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단어에 들어가는 한정사이다.(p.25) 이것은 형성의 원리로 만들어진 한자에서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意部]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공(功)자에서 력(力)은 의미만을 나타내는 요소로 쓰인다.

 

  한자나 이집트문자가 실제로 표음과 표의의 기능이 혼합된 언어이다. 그런데 이들 문자에서 글자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 청각적인 이미지보다 시각적인 이미지가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글자 자체가 사물의 형상과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 이것은 사람의 감각 중 시각이 청각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차원이 낮은 감각이라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나 후각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것으로 성적인 감각과도 곧바로 연결된다. 반면 청각은 좀더 고차원적인 감각으로 인식된다. 후각이나 시각은 영혼의 정화를 위해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청각은 인간의 영혼을 한껏 고양시킬 수 있는 감각에 속한다. 이러한 생각은 음악을 통해 인간의 성정을 교화하고 우주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동양의 음악이론[樂論]에 잘 드러난다. 『서경』에는 음악을 통해 온갖 짐승과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우주적 조화를 이루어내는, 서양의 오르페우스를 연상시키는 기(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유교 문화에서 음악은 이상적인 정치[王道政治]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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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상의 세계 살림 클래식 1
벤자민 슈월츠 지음 / 살림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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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고대사상의 세계, 빚어내기와 감상하기


1.


  아이들은 똑같은 찰흙을 가지고 각기 다른 모양을 빚어낸다. 또 그럴듯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서사에서 동일한 줄거리(story)는 작가의 플롯에 따라 지루한 이야기로 바뀌거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중국고대사상사를 서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의 관점과 역량에 따라 ‘중국고대사상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빚어질 것이며, 이것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도 하고 따분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중국고대사상사’나 ‘중국고대철학사’, 혹은 이와 유사한 제목을 가진 책들은 1000년을 넘나드는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페이지 수가 방대하기 마련이다. 독자들은 우선 그 분량에 질려버린다. 게다가 그것이 딱딱한 철학(혹은 사상)서적이라면 아예 손도 대지 않기가 십상이다. 또한 중국고대사상의 세계를 빚어내기 위한 재료들은 장인(匠人)의 감식력을 통해 세밀하게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대부분의 선진 시기 문헌들은 한대에 이르러서야 온전한 책으로 편집되고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벤자민 슈워츠의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는 제목에 걸맞게(?) 600페이지를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을 자랑한다. 이런 제목의 책이 이 정도의 분량이면 따분하기 십상인데, 필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흥미진진하였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독서경험에 그칠 수 있지만,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한다. 위에서 말한 찰흙의 비유를 들자면, 저자는 찰흙의 결과 질감을 그대로 살려 멋진 작품을 만드는 장인에 견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플롯’을 통해 이 책의 ‘서사’를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있는가? 이것은 저자의 중국고대사상에 대한 관점과 방법론 그리고 서술의 방식 등에 대한 질문이다. 필자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비교 사상’의 방법을 통해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비교(p.95)로부터 시작하여 일관되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저자의 말과 같이 이 방법은 “검토되지 않은 가정들에 이의를 제기(p.97)”함으로써 선입견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동서양의 사상가를 맞세워 놓는 작업은 그 자체로 흥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좀더 넓은 시야에서 한 사상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 중 누구의 제자이든지 간에, 후대의 제자들은 악의에 찬 도전에 대항하여 스승들의 암묵적 전제들을 보호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종종 스승들이 논의하기를 거부한 바로 그러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공자와 맹자의 관계를 예수와 바울의 관계와의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모든 ‘비교’의 방법이 그렇듯, 이것은 단편적으로 유사점과 차이점의 목록을 작성하는 작업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단순비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깊이 있는 감식력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저자의 작업이 “전체적 특징들에 대한 투박한 일반화보다는 오히려 이것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p.27)”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둘째,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성과를 원용해 중국사상 혹은 각 사상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저자가 ‘철학사’나 ‘지성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굳이 ‘사상사’라는 말을 쓰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저자는 사상이라는 말이 갖는 ‘경계의 불확정성(p.7)’을 선호하며 학제적인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를 진행시킨다. 이것의 구체적인 예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나 기어쯔(Clifford Geertz) 같은 인류학자들의 견해, 각종 고고학적 성과, 신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종교학의 연구 성과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브래드베리(R. E. Bradbury)의 아프리카 에도 족 연구 및 기어쯔의 말을 원용해 ‘초기의 문화 방향설정들’ 중의 하나로 ‘조상숭배’와 ‘혈연관계의 중시’를 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의 사상들을 검토하는 데에 계속해서 중요한 주제 혹은 척도로 기능하게 된다.

  셋째, 각 사상에 대한 분석에서 초점을 선택함으로써 효과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서론에서 “내가 보기에 특별한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문제와 주제들만으로 초점을 제한하겠다(p.27)”라고 밝힌다. 예를 들어, 공자를 다루고 있는 3장에서 초점으로 선택한 항목은 (1)원전으로서의 『논어』, (2)예의 영역, (3)인에 대하여, (4)학습[學], (5)가족, (6)정치 : ≪논어≫에서 “정치적인 것”의 영역, (7)종교적 차원과 운명[命]의 역할, (8)비판자들에 대한 대응, (9)제자들이다. 이 초점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공자의 생애를 언급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풍우란이나 가노 나오키의 ≪중국철학사≫를 비롯하여 공자사상을 다루는 책들은 대부분 공자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면을 할애한다. 그러나 슈워츠는 “나는 방대한 역사적, 전설적 자료들로부터 재구성되어야 하는 공자의 생애를 일일이 설명하려 들지는 않겠다”라고 밝힌다. 이것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인 논의를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대기를 생략함으로써 얻은 지면에는 ‘원전으로서의 ≪논어≫’나 ‘비판자들에 대한 대응’과 같이 독특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넷째, 꼼꼼한 문헌비평의 토대 위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전 문헌을 다루는 학문에 있어 문헌비평은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이다. 문헌의 성서(成書)시기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이 근본적으로 특정 연구의 가치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국 고전 문헌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중국의 고전 문헌에서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다루는 각종 문헌에 대해 조심스럽게 문헌학적 판단을 내리는데, 이러한 태도는 “만약 ≪논어≫에 나타난 사상이 공자 사상 이전에 구체화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다른 문제들은 몰라도 이 책에서 제기된 생각과 가설들의 일부는 진실로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p.27)”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2.


  저자는 거듭하여 제자백가가 활동한 “이 시기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견해의 대부분은 전한초의 경학자들에서 유래한다”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서지학적 자료로 ≪사기≫에 실린 司馬談의 <論六家要旨>와 ≪한서≫ <예문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제자백가, 특히 유가에 대한 평가는 ≪사기≫의 <論六家要旨>와 ≪한서≫ <예문지>에서도 서로 다르다. 사마담은 도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점도 지적하지 않고 장점만 이야기하지만, 유가에 대해서는 장단점을 골고루 이야기한다. 다만 사마담이 말하는 도가는 노장의 도가라기보다는 황로도가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한서≫ <예문지>에 이르면, 도가에 대한 칭찬은 사라지고 유가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것은 사마담이나 사마천의 시기에는 아직 유가의 위상이 확고하지 않았던 반면에, 반고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유가의 지위가 확고해졌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가 및 제가백가에 대한 평가가 시대의 담론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본래 모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각 시기의 담론에 의해 덧씌워진 껍질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고대 중국에서 공자 및 유가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자는 제자백가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와 공통적인 담론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은 ≪노자≫의 사상이 ≪논어≫보다 앞선 시기이거나 동시대일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슈워츠가 “후대에 와서 ≪도덕경≫이라고도 불리게 된 노자의 저서가 도가 사상의 초기 경향과 공자와 묵자보다는 나중이면서도 아마도 역사적 장자 및 직하 학파의 다양한 도가들보다는 앞서 등장한 것으로 생각되는 형태를 대변한다는 견해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동의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p.291)”라는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슈워츠는 ≪노자≫와 ≪장자≫가 어느 정도 ≪논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학습에 대한 공자의 생각에서조차 노자와 장자의 노선을 가리키는 경향들이 암시된다(p.294)”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일 경우, ≪논어≫에 자주 보이는 무위의 경지를 나타내는 듯한 구절들은 후대에 첨삽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공자의 사상도 후대 유가들의 성격에 비추어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논어≫의 각 구절에 대해서도 좀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공자 및 유가는 고대전통 및 고대전적을 계승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검토되어야 한다. 풍우란에 따르면, 유가는 기원상 교육과 예식의 보좌[敎書相禮]를 직업으로 삼았던 유에서 나온 학파이다.1) 이와 관련하여 “공자 자신은 서관(書官) 계통의 공무원 계층이었음이 분명한데, 이 계층은 아마도 국가 서고에 보존된 전통문화유산의 관리인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언급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자 자신도 전통의 계승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으며, 제자들에게 詩, 書, 禮, 樂과 같은 전통적 지식을 교육하였다. 제자백가 중에서 고대의 전통과 전적에 대해 가장 열심을 가진 집단은 유가였음에 틀림없다. 유가가 전국시대 동안의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결국 한초에 주류집단이 된 데에는 고대전통 및 고대전적에 대한 지식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물론 시, 서, 예 등은 유가의 독점적 지식이 아니고 지식인들의 공통 자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가는 점차로 ≪시경≫이나 ≪서경≫과 같은 전적들을 독점하고 ≪주역≫과 같은 책들도 해석을 통해 자신들의 전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의례를 정리하여 ≪예기≫를 편찬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통일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 성과를 나타내었다. 한나라 초기부터 수성(守城)의 시기에는 의례 및 전통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유자들이 입지를 강화하기 시작한다. 한무제에 의한 ‘罷黜百家, 獨尊儒術’의 조치는 이러한 흐름의 완결판에 해당한다.

  끝으로 공자와 유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에 있어 도덕성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유가는 무엇보다 위정자의 도덕성을 요구하며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학파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도가는 도덕과 비도덕의 구별을 넘어서려고 하며, 묵가의 관심사는 개인적인 도덕성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에 치중해 있다. 법가나 명가 그리고 종횡가에 있어 도덕성은 크게 중요한 화두가 아니다. 그러나 내면적 도덕성은 전통시기 중국의 유학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어 온 주제이며, 유학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슈워츠는 “맹자는 수많은 적들에 대항하여 공자의 ‘내면’ 강조를 ‘이론적으로’ 옹호하는 엄청난 어려움에 처한 인물로 간주(p.611)”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대학≫의 저자를 증자가 아닌 맹자 계통으로 추정하는 입장에 동조한다. 이어서 ≪대학≫과 ≪중용≫이 모두 내면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맹자 계열의 저작물로서 남송대에 ‘내적 수양’을 중시하는 주희에 의해 사서로 선정되는 이유임을 밝힌다. 또 도덕성에 대한 믿음은 순자가 유가인지를 판정하는 기준으로 쓰일 수 있다. 슈워츠는 “도덕-문화유산의 ‘내면화’가 결국 덕의 획득을 초래한다는 이 순수한 낙관적 믿음 때문에 사실상 사람들은 순자가 정말로 성악설을 신봉했는지를 의심했다”라며 순자의 도덕성과 내면성에 대한 믿음을 변호한다.


3. 


  이상으로 필자가 벤자민 슈워츠의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를 읽고 느낀 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필자의 앎이 부족하여 저자의 솜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부분이 많을 듯하다. 이 책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자의 의도까지 감상할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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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이야기 1- 줄거리와 역사 이야기
폴 리쾨르 지음, 김한식 이경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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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전과 경학
장조태 외 지음, 최석기 외 옮김 / 경인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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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의 제국
롤랑 바르트 지음, 김주환 옮김 / 민음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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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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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 <논어>, <맹자>, <순자>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김승혜 지음 / 지식의풍경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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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은 세월의 흐름을 나이테 속에 차곡차곡 간직하여 外皮를 덧붙여가지만, 空洞化 현상은 나무의 중심을 텅 비게 만든다. 문명의 발달과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해 낸 핵심적 사유는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여 끊임없는 변전의 길을 걷게 된다. 문명의 기본적 正典(經, canon)은 계속되는 이차적 해석과 이데올로기적 윤색에 의해 겹겹의 표피를 지닌 거대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정전 텍스트에 접근하려는 후대의 시도는 여러 차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유교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더욱 많은 난관을 거치게 된다. 유교문화는 2000년 이상 살아있는 문명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 시간의 무게만큼 두꺼운 표피를 형성하였고 핵심적 사유에 공동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시유교 텍스트의 해석에는 필연적으로 효과적인 방법론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취하는 접근법은 고전 텍스트의 해석을 위한 모범적인 방법론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방법론 중 하나는 ‘역사 비판적(historical critical) 연구’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맹자의 사상에 입각에 공자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論語>라는 사료 안에서 그 자체의 용어와 사상들을 체계화하여 공자사상의 전체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의 사료 비판은 荀子의 性惡說을 다루는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저자는 문헌비평을 통해, 性惡說이 순자의 사상체계에서 갖는 위상이 미미함을 논증하고, 순자 연구에 있어서 「性惡」편을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의 논의를 확장하면, 성리학적 담론구조 내에서 순자의 텍스트는 의도적으로 誤讀되었고 성악설은 그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탈바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두 번째 방법은 ‘해석학적(hermeneutical) 이해’인데, 이는 원시유가의 발전 과정에서 해석학적 작업이 계속하여 일어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人間’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결국, 모든 사상은 전통에 대한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확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개의 사상은 독립된 실체로서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앞뒤 시기의 사상적 맥락 안에서 관련과 차이를 통해서만 제대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나아가 '다른 시기·다른 곳에 살았던 ‘그들’이 지금·이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인문학적 대답의 하나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교문화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서점에서는 원시유교를 다룬 책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승혜의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는 원시유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까지도 주자학은 우리 사회의 정통 이념이었고, 이것은 유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편향되게 만들었다.

이 책은 漢代 경학이나 宋代 성리학에 의한 재해석 이전의 유교의 본래적 모습을 제시하고 있어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일반 독자들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서술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따라서 원시유교의 개괄적 윤곽을 파악해내는데 성공했다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희열은 몇몇 명석한 독자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해석자는 텍스트에 의해 사유된 부분과 사유되지 않은 부분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저자는 전자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고 감각적인 설명을 제공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텍스트가 사유하지 않았거나 혹은 은폐시킨 부분을 드러내는 것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두 요소의 대립과 모순을 해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좀더 설득력 있는 논리가 도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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