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 <논어>, <맹자>, <순자>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
김승혜 지음 / 지식의풍경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수목은 세월의 흐름을 나이테 속에 차곡차곡 간직하여 外皮를 덧붙여가지만, 空洞化 현상은 나무의 중심을 텅 비게 만든다. 문명의 발달과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관찰할 수 있다. 하나의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해 낸 핵심적 사유는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여 끊임없는 변전의 길을 걷게 된다. 문명의 기본적 正典(經, canon)은 계속되는 이차적 해석과 이데올로기적 윤색에 의해 겹겹의 표피를 지닌 거대한 체계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정전 텍스트에 접근하려는 후대의 시도는 여러 차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유교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더욱 많은 난관을 거치게 된다. 유교문화는 2000년 이상 살아있는 문명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그 시간의 무게만큼 두꺼운 표피를 형성하였고 핵심적 사유에 공동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시유교 텍스트의 해석에는 필연적으로 효과적인 방법론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취하는 접근법은 고전 텍스트의 해석을 위한 모범적인 방법론의 하나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방법론 중 하나는 ‘역사 비판적(historical critical) 연구’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맹자의 사상에 입각에 공자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論語>라는 사료 안에서 그 자체의 용어와 사상들을 체계화하여 공자사상의 전체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저자의 사료 비판은 荀子의 性惡說을 다루는 부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저자는 문헌비평을 통해, 性惡說이 순자의 사상체계에서 갖는 위상이 미미함을 논증하고, 순자 연구에 있어서 「性惡」편을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의 논의를 확장하면, 성리학적 담론구조 내에서 순자의 텍스트는 의도적으로 誤讀되었고 성악설은 그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탈바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두 번째 방법은 ‘해석학적(hermeneutical) 이해’인데, 이는 원시유가의 발전 과정에서 해석학적 작업이 계속하여 일어났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人間’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결국, 모든 사상은 전통에 대한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확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개개의 사상은 독립된 실체로서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앞뒤 시기의 사상적 맥락 안에서 관련과 차이를 통해서만 제대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나아가 '다른 시기·다른 곳에 살았던 ‘그들’이 지금·이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인문학적 대답의 하나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교문화의 영향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서점에서는 원시유교를 다룬 책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승혜의 <유교의 뿌리를 찾아서>는 원시유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초까지도 주자학은 우리 사회의 정통 이념이었고, 이것은 유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편향되게 만들었다.

이 책은 漢代 경학이나 宋代 성리학에 의한 재해석 이전의 유교의 본래적 모습을 제시하고 있어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아울러 일반 독자들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하게 서술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따라서 원시유교의 개괄적 윤곽을 파악해내는데 성공했다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희열은 몇몇 명석한 독자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해석자는 텍스트에 의해 사유된 부분과 사유되지 않은 부분의 중심에 위치해야 한다. 저자는 전자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고 감각적인 설명을 제공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텍스트가 사유하지 않았거나 혹은 은폐시킨 부분을 드러내는 것에는 무관심한 듯하다. 두 요소의 대립과 모순을 해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좀더 설득력 있는 논리가 도출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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