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비밀문자 -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브리지트 맥더모트 지음, 권영진 옮김 / 예경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흔히 상형문자의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 문자와 한자를 이야기한다.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설명 중 한자와 비교해 볼 만한 내용 몇 가지가 눈에 띈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cois Chanpollion)은 로제타석에 새겨진 세 가지 문자를 비교하여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 비밀은 바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의미인 동시에 소리를 나타낸다(p.11)”는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학자들은 상형문자는 직접적으로 의미만을 나타낸다고 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집트 문자가 사물의 형태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데, 이 자명성이 오히려 사람들이 사유를 전환해 볼 기회를 박탈했던 것 같다. 이것은 청대(淸代) 고증학(考證學)에서 인성구의(因聲求義 : 소리를 통해 의미를 파악한다)를 통해 경전 연구에 혁명적인 성과를 거두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고증학자들은 어떤 글자들이 문자의 의미[字義]나 형태[字形] 상의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다른 글자를 대신하여 쓰이는 현상, 즉 가차(假借 : 거짓으로 빌려 쓴다)의 원리를 규명하였다. 가차는 소리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근거하여 한 글자가 다른 글자를 대신하여 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害)와 갈(曷)은 고대에는 음이 동일하였기 때문에 서로 대신하여 쓰곤 했다. 따라서 고대 전적에서 갈(曷) 대신 쓰인 해(害)는 ‘왜’라는 뜻의 의문사로 해석해야 한다. 이 원리를 모르면 ‘해치다’라는 해(害)의 뜻에 얽매어 억지 해석을 하게 된다.

 

  글자가 만들어진 단계[造字]와 이것이 쓰이는 단계[用字]를 구분하지 않은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다. 이집트 문자나 상형(象形 : 사물의 형태를 본떠 글자를 만드는 것)의 원리로 만들어진 한자는 분명 사물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쓰이는 단계나 좀더 복합적인 단어를 구성해 가는 단계에서 일부의 글자들은 단지 소리의 표기 수단, 즉 발음기호로만 사용되었다. 이집트어의 24개의 기본 알파벳(pp.22-23)이 그러하며 형성(形聲 :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과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이 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원리)의 원리로 구성된 한자의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聲部]이 그러하다. 그리고 한자의 쓰임에서 가차는 글자 전체가 소리의 유사성이나 동일성에 근거해 다른 글자 대신 쓰인다. 일부의 한자나 이집트문자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는 상형문자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이 가정을 좀더 복합적인 글자나 실제의 쓰임에까지 밀고 나간다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샹폴리옹도 문자 자체가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가 밝혀낸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문자가 한 단어가 아니고 새로운 단어를 구성하는 발음기호의 일부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걸상을 형상화한 ⃞은 기본 알파벳인 24개의 단자음 중 하나로 [p]음의 발음기호이다. 이런 발음기호 몇 개가 모여서 하나의 단어를 형성하게 된다. 다만 이집트어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고 자음만을 표기한다. 형성(形聲)의 원리로 이루어진 한자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의 글자는 원래 독립적인 한 글자이다. 예를 들어, 상(像)자에서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은 상(象)이고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은 인(人 : 사람)이다. 코끼리의 모습을 본뜬 상(象)자는 본래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人)과 결합할 때에는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발음기호로만 쓰인다.

 

  이집트문자에서 특이한 것 중 하나는 한정사의 용법이다. 이들도 본래 기본 알파벳에 쓰이는 글자들과 마찬가지로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들은 발음기호로 쓰이지 않고 단어의 의미를 한정하는 기능을 한다. 한정사들은 모양을 본뜬 사물의 의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턱수염이 있는 인물이 앉아 있는 형상은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단어에 들어가는 한정사이다.(p.25) 이것은 형성의 원리로 만들어진 한자에서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意部]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공(功)자에서 력(力)은 의미만을 나타내는 요소로 쓰인다.

 

  한자나 이집트문자가 실제로 표음과 표의의 기능이 혼합된 언어이다. 그런데 이들 문자에서 글자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 청각적인 이미지보다 시각적인 이미지가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글자 자체가 사물의 형상과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 이것은 사람의 감각 중 시각이 청각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차원이 낮은 감각이라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나 후각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것으로 성적인 감각과도 곧바로 연결된다. 반면 청각은 좀더 고차원적인 감각으로 인식된다. 후각이나 시각은 영혼의 정화를 위해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청각은 인간의 영혼을 한껏 고양시킬 수 있는 감각에 속한다. 이러한 생각은 음악을 통해 인간의 성정을 교화하고 우주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동양의 음악이론[樂論]에 잘 드러난다. 『서경』에는 음악을 통해 온갖 짐승과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우주적 조화를 이루어내는, 서양의 오르페우스를 연상시키는 기(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유교 문화에서 음악은 이상적인 정치[王道政治]를 이루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