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 탐구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도입부에서 나는 <경제학 콘서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 사례의 제시를 통한 흥미 유발이 참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과 <경제학 콘서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 가지 사례’를 통한 다각적 분석이라는 점이다.

팀 하포드의 책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제시함으로써 각 사건들에 대한 경제학적 논리를 제시하는 반면
탐 밴더필트의 신간 <트래픽>은 교통체증과 운전을 소재로 한 단 하나의 소재만으로 다각적 분석이 이루어진다.

이 책은 제목의 <트래픽>을 포함하여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거듭된 고찰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그러한 책을 읽는 내내 운전자들의 여러 심리 묘사들과 사건들을 접하면서 ‘아 이런 부분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하는 동질감에 의한 끄덕임과 재미를 느꼈고,

모든 인간은 결국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체증을 바탕으로 운전이라는 한 가지 테마에 대해 마인드맵을 그리듯 진행되는 이 책은, 최근에 읽은
<물의 미래>를 떠올리게도 했다.(이 책은 물과 치수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점층법 적으로 그려나간다.)
어떤 한 가지 현상을 보며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온갖 호기심과 질문을 다 쏟아내며 기존에 우리가 접해오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의 백과사전이라고 칭할 수 있지 싶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의 뇌가 15%도 채 활용되지 못했다는 가설이 어쩌면 진짜일거란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결코 돌이켜 연구해 볼 수 없는 지나간 시절에 대해 묘한 환상을 품고 살아간다.
이 책은 점차 진화해가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묘한 동정심과 이상화되어 그려지는 과거들에 대해
그 시절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결코 다른 점이 없었다는 결론 또한 제시한다.

나는 이런 고정관념에 저항하는 도전적인 태도가 참 맘에 들었다.

이 책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한 고찰이라고 판단하기에 매우 놀랄 만큼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방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한글창제라는 업적을 통해 지금 내가 이 서평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신
세종대왕께서는 과거 세자 책봉 이전 군 시절부터 한 번 손에 든 책은 100번씩 읽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야만 책이 주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와 교훈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런 식의 독서습관을 시행하기엔 매일매일 꼭 읽어봐야 할 너무나 좋은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난 이번 <트래픽>처럼 100번 읽고픈 책을 만날 때 마다 너무나 화가 난다.







미국의 스타벅스에는 자동차 전용 창구가 있으며, 오디오북이란 상품은 매일매일 출퇴근 등 교통 체증 속에서
오랜 시간 갇혀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개발된 아이템이라고 한다. 위의 내용들은 내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이런 부류의 책들은 매번 이렇게 새로운 지식들을 내게 전달해주어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저자는 말했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환경에 대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관찰해보겠다는 의도로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이렇게 저자의 의도였다며 초반부터 언급되니
지금까지의 독서경력과 그것을 통한 통찰력이 헛된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비록 장롱면허라고는 해도 짧은
운전경력을 통해 내가 느꼈던 딜레마이자 각 상황들에 대한 공감 백만배가 이루어지는 사건 제시들,
그리고 타인을 좀 더 내 마음처럼 이해하는 처세 등이 저자의 의도와 연구결과 제시에 따른 성과였다.

독서 내내 ‘와 진짜 그렇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 했다. 한 때, 서점가에서 대 파란을 일으켰던 만화
<데스노트> 속 사신이 말하길 “인간은 참 재밌어~”라고 말하던 그 대사도 떠올랐다. 단 한 가지 현상만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연구를 진행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래서 인간은
배우고 봐야 하는가 싶기도 했으며, 결국엔 작가가 염려스럽기까지 했다.

‘대체 이 사람은 자기 뇌에서 쏟아지는 궁금증을 어떻게 다 감당할까?’ 싶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요즘 자주 듣는 개그맨 강호동의 유행어처럼 언빌리버블! 이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그것으로 인핸 태도양상에 관해 연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연구에 대한 분석 결과가 결국 경제학적 마인드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미 그의 가치관이 완연하게 경제학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한 힌트는 글 전반에서 종종 드러나지만 아주 분명하게 부각된다.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 효율성을 최우선시 하며, 그것에 대해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은 경상계열을 전공하는 나로서도 심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아주 복잡한듯하지만 결국에는 매우 단순한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하지만 그 결론은 최종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이익(경제적 유인)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경제학의 기본 개념이자
모든 연구의 전제다. 결국 저자는 그러한 가치관으로 초지일관 연구업적을 제시해간다.

이 책은 다양한 학문적 이론과 전문용어를 배울 수 있는 보물 상자였다. 경제학에 관한 기본 개념과 다양한
현상에서 적용되는 그 중요성 또한 배울 수 있었으며, 어려운듯하면서도 사실은 간단한 인간심리에 대한
고찰도 엿볼 수 있었다. 참 여러모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일상의 대화에서 내가 주로 화자가 되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편이다. 그런 내가 어느 한 구석에서
조용히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독서를 즐기는 것은 그런 생활 태도에서 결핍된 경청에 대한 욕구충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려>나 <경청>이 아닌 바로 이 책 <트래픽>을 통해서 말이다.

독서는 언제나 즐겁다.

이 분야에서 느껴지는 매력이나 장점들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퐁퐁 솟아난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그런 느낌을 새삼스럽지만 분명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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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압의 기술
마수취안 지음, 장연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단연 간결하고도 그 의미가 심도 있게 전달되어진 목차였다.
마음을 헤아린다는 의미의 제 1장 목차인 도심(度心)에서부터 마지막장까지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아주 기품 있는 자태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고전(그 중 특히 한문권 서적)에 상당히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에 이와 유사한 책들을 더러 봐왔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에 비슷한 형식으로 출간된 바 있는 이와 같은 부류의 여러 책들 중 이번 <제압의 기술>에서
최고로 느낄 수 있는 강점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시아권 고전 중 최고의 가치로 꼽아지는 <삼국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처세와 리더십의 교훈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는 것 이었다.

온고지신이라는 소중한 만고불변의 진리, 그것을 나는 이 책에서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틈이 날 때마다 책을 꺼내어 펼쳐보며 꼬박 3일의 시간을 할애했다.
내용이 크게 어렵거나 지루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 크게 깨우쳐야 할 귀한 교훈이나 가치를 제시하는 만큼
그 상세한 내용들을 곱씹어보고 그려보며 세심하게 정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던 중 논어나 사서삼경, 명심보감 등 우리 선조들이 교육의 기초로 삼았던 여러 고전들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이러한 책들의 교훈적 가치에 대한 그 중요성을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왜 그런 책들을 굳이 찾아서 읽지 않는 것일까? 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그 첫 번째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재밌고 쉽게 읽으며 교훈까지 얻을 수 있는 책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접한 이 책이 그런 목록 중 하나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마수취안馬樹全은 문학과 역사에 일가를 이룬 고적古籍 전문가이다.

주로 고전에서 소재를 찾아 문학 서적을 집필했고, 역사서 및 옛 경전을 탐구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재조명하고 현대적 감각에 맞게 풀어 쓰는 작업에 주력해왔다. 

이들 중 선인들의 지혜를 경세철학 및 처세의 관점에서 파헤친 『지학: 멈춤의 지혜 止學』, 『모략의 즐거움』,
『守弱學(수약학)』『權謨殘卷(권모잔권)』 등의 책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1세기 중국의 이인異人’으로 불리는 그는 길림성 장백산 기슭에서 생활하며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출처/ 김영사 네이버 카페 ▶ http://cafe.naver.com/gimmyoung.cafe)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제시되는 중국 전반의 역사 속 사례들을 통해서 문득 느낀 것이 또 하나 있다면
‘우리의 고전도 이토록 잔인하고 가학적이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이 부분은 정말 가볍게 넘기기 힘든 점이었다.

각 소단락의 제목이 되는 원문의 기원인 실제 이야기 속 배경들을 통해 중국사를 총망라 할 수 있다는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사학에 대해 무척 깊이있는 애정을 지닌 내게는 더 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처세와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교훈을 얻으면서 역사에 대한 상식도 접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는 수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새삼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고전 문학들..
그 중에서도 여제 무측천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 싶은 욕구를 마구 느꼈다.
이런 부분이 내가 책을 읽으며 느끼는 묘한 쾌감이다.
지적욕구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거듭 이어주는 것! <제압의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 만큼은 더없이 완벽한 책이었다.

공자의 나라 중국,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나라의 역사보다 매우 잔혹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각양각색의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던 아주 역동적인 나라.

역사를 보면 현재 그 나라의 문화와 국민성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이 책을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례적인 수준의 성장이 가능한 그 배경적 요소를 비롯하여 세계인들 중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민족문화 등 여러 가지 면모를 파악했다고 겁 없이 말하겠다.
그만큼 단순히 처세나 인생에 대한 단편적인 교훈이 아닌, 여러 가지 의미의 가르침을 주었던 책이었다는 뜻이다.

아, 이번엔 중국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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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소설을 읽을 때면(특히 외국소설의 경우)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무한한 지루함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의 이름과 관계를 익히는 것부터 필요 이상의 질질 잡아끄는 식의 워밍업까지
독자를 참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난제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요즘 취업준비로 늘 강조 받는 말 중 하나로 자기소개서의 도입부가 색달라야 읽어줄 마음이 생긴다는 말처럼,
이 책 또한 시작부터 너무나 흥미로워 그러한 사실을 눈치 챌 겨를도 없이 빠른 속도로 빠져들어 갔다.

장르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뒤틀려버린 인간의 윤리관을 다룬 만큼 글의 중간 중간에서 발견되는 ,
당연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내용들을 따가울 만치 꼭꼭 집어주는 작가의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몰입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슬슬 상황 파악이 될 무렵부터,
편지도 아니고 수십 명의 다수를 눈앞에 두고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전달하는 화자를 묘사한 글이
참 신선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이야기가 지루했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제 1장 성직자 中
흔히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다고 변명하면서 나잇살이나 먹어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하고 싶은 일을 금방 찾아 그 일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가지 요인들 중 이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목차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굳이 찾아보자면 인터넷 판타지소설 정도)
각자의 개성들이 강한 인물들의 명사를 순서대로 제시한다.

그 중 제 1장은 성직자인데, 이 대목만큼을 딱 완독했을 때 나는 철저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전체 내용을 읽은 뒤에는 엄청난 혼란이 밀려왔다.
대부분의 목차는 이야기 속 화자이자 메인인물을 묘사(혹은 역설)하는 명사가 제시된다.
그런데 적어도 이 목차  만큼은 결코 그 대상이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나는 어떤 소설이든 영화든 어떤 내용을 접할 때 그것에 대한 사전정보를 일체 배제하고 백지의 상태로 다가선다.
사실 제 1장이 너무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이후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단편 모음집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1장에서 느꼈던 배신감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충격과 반전이 뒤따르는 것이
바로 2장 순교자편이다. 그리고 이런 감상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된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무서워’, ‘끔찍해’, ‘으악, 반전이야!’라는 말을 거듭 되풀이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과정을 옆에서 반 이상 지켜봐 온 내 친구는 그러면서 뭐 하러 굳이 읽고 있냐고 다그쳤지만,
결코 그런 심리상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이 책의 마력이었다.
(완독 후에 나는 그 친구에게 이 책을 빌려줬고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음은 물론이다.)

이쯤 되니 내가 무척이나 극찬하면서도 결단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일본의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와
<20세기 소년>이 떠올랐다. 목차가 전개될수록 존재의 여부조차 몰랐던 퍼즐의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는 느낌
(심지어 완성된 퍼즐은 입체효과까지 가능한 수준의 기분)이었다. 장르문학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탄탄한 완성도를
필요로 하지만 이것은 실로 대단하다는 느낌뿐이었다. 비록 기존에 출판된 다른 작품들 또한 대단하겠지만, 

더불어 이쪽 분야에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참 별일이고 섬뜩했다.


이 작품은 반전으로 시작해서 그 반전이 꼬리를 물다가 끝끝내 반전을 거듭하고 결국 반전으로 맺어진다.
요즘 이런 느낌의 작품을 즐기는 팬들이 워낙 신선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선호한 탓에 마치 반전만 그럴듯하면
완성도 있는 작품인양 착각하는 창작자들이 늘어 걱정이라는 전문가의 평을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반전 규모라면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우쭐 될 만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다른 부분들이 취약한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문학을 분석적으로 접한 마지막 시기) 진짜 제대로 된 복선이라는 것을
체험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만난 <고백>을 통해서 소위 입에 신물이 날 정도로 누리고 체험했다.

내가 책을 읽을 때, 단어와 상황 하나하나를 연상하고 집착하는 타입인 것이 이때만큼 무섭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작가는 앞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양 툭툭 던진 소재들에 대해 후반부에 이르러 잔혹한 풀이를 제시한다.

앞만 곧게 바라보며 걷던 사람을 부지불식간에 뒤통수를 쳐 멍하게 한 다음 뒤쪽에 매사 주의를 기울일 때쯤이면
다시 앞에서 공격을 가하는 느낌. 딱 그것이었다. 독자가 작품 속 인물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느낌이 드는 건 실로
매우 더러운 기분이다. 하지만 결코 그 작품을 놓을 수 없는 중대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이 작품이 바로 그랬다.

이 작품은 단순히 끔찍하고 첨예하기만 한 얘기가 아니다. 잔혹한만큼 비극적인 사건들의 나열을 통해 이쪽 분야에
문외한이자 지독한 선입관에 사로잡혀있던 나 같은 독자마저도 감성과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자극제였다.
지금에 와서 이 리뷰를 작성하느라 생각해보니 이 작품의 모든 목차는 각 인물들에 대한 조롱이자 역설인 듯하다.

누군가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에 손을 뻗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조언할 것이다.
각 내용에서 목차가 제시하는 단어의 의미를 놓치지 말라, 그리고 결코 빠르게 책장을 넘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내가 이제까지 만난 몇 안 되는 장르문학들은 언제나 사건이 일어나고 여러 미스터리와 실마리들을 매치시키며
그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으로 전개됐다.(아마 실제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과감하게도 도입부에서 범인의 존재와 행적까지 깡그리 밝히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래서 이후에 제시되는 이면적 이야기들이 더 소름끼치고 놀랍게 느껴진 듯하다.


이 작품은 분명히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서술된다.(각 목차별 메인 인물이 자신의 관점에서 본 내용을 읊어준다)
하지만 전체 플롯을 살펴본다면 이 작품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분명하다. 모든 상황을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 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굽어볼 수 있지만, 그 인물들이 제시하고 설명하는 이야기 들 외에는 감히 더 찾아낼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고지의 높이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높아진다는 것이다.
기존에 제시되지 않던(혹은 주목받지 못하던) 인물들이 뛰쳐나와 새로운 폭로전을 이어가는 것 또한
전개에 도움을 주지만, 마치 하나의 카메라가 점차 구도를 넓혀가면서 그 시야를 확대해가는 느낌정도로 그친다.

이 부분에선 전혀 그 반전을 예상치 못했기에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준 영화 <마더>가 떠올랐다.

후반부에 이르러 사건의 주도자인 인물들의 관점이 펼쳐질 때면 이 작품의 마력은(자세히 살펴보라 나는 위에서부터
매력이 아니라 마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극대화된다. 그들이 비록 극악한 범죄자이기는 하나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은연중에 초조함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 구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부분은 다른 만화 혹은 영화에서 보았던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마치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사건인양 공포를 느끼고
초조해하던 모습이 자동으로 연상될 만큼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장면 하나하나를 
그려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작가는 그 정도 수순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싸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심리 행태까지 묘사하여 독자를 두렵게 한다. 실로 무서운 사람이다.

결국 사건의 전말이 상당부분 이상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하지만 이것 또한 독자의 착각이다) 심드렁하게
자기 얘기만 지껄이고 있는 책에다 대고 하소연과 부탁을 하게 된다. ‘이제 제발 그만하자고, 이만하면 됐다고,
꿈에서 볼까 실제로 일어날까 혹은 그 또래 사람들이 모두 그런 인물들로 보여 질까 무섭다고.....’

하지만 역시 멈춤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앞에서 제시하는 내용들도 결코 어설프게 던지는 것이 없지만,
한 번 접했을 때는 그 진상을 파악할 겨를이 없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뜨악 하는 경련과 함께
아귀가 철컥철컥 맞아가는 플롯을 접할 때, 이 책은 완성된다. 함부로 펼쳐들지 말라, 하지만 이미 펼쳐든 이상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라. 이 책을 보려는 이들에게 내가 유일하게 충고하고픈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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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로맨스
서민경 지음 / 우신(우신Books)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인터넷 연애 소설을 직접 구매해서 읽고 서평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개인적인 여러 사정 덕분에 우연히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구매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저 압사직전의 업무 환경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후에는 일말의 오기와 자존심 대결로 번져나갔다.





근래에는 인문학이나 경영/경제분야 서적 혹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쓴 계발서를 많이 읽어서인지
오랜만에 접한 아주 평범한 로맨스물의 소설에 적응하는데 엄청난 어려움을 느꼈다.

나는 비싼 돈을 주고 보는 영화도 칙릿이나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는 아주 평범하고 감성적인 여대생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었다.

연애 혹은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에쿠니가오리 혹은 공지영씨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 싶은 대단한 작가들의 글을 보다가 이제 갓 20대 초반의 신인 작가 글을 본다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인터넷 로맨스 소설 장르다보니, 더더욱)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중/고교 학창 시절에는
왜 이런 책들을 보며 그토록 울고 웃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귀엽고 머쓱한 감상마저 들었다.







요즘 붐업중인 배우 윤상현, 아래 사진은 데뷔 전 모습이라는데 정말 잘났다~!!




개인적으로는 ~~~하는 A(인물)였다. ~~~라고 느끼는 B였다.
라는 식의 문체가 너무 빈번했다는 것 외엔 그냥저냥 기분전환 겸 읽기 좋다고 생각했다.

워낙 유사장르의 드라마와 영화를 즐기는 탓에,
감명깊게 본 여러 작품들이 뒤섞여 짬뽕된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뭐 요즘 드라마나 영화가 다 하나같이 거기서 거기니(특히 이 장르는) 이건 따질 여지도 없는 문제라고 본다.

너무나 완벽해서 그야말로 딱 소설 속 주인공이다.. 싶었던
남자주인공 태현은 이 책을 드라마화 한다면, ’윤상현이 그 역할을 맡아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의중을 알 길은 없으나 묘사나 전반적인 캐릭터의 느낌이 진지한 태봉이와 꼭 와닿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이나 아가씨를 부탁해 등 그의 훈남 캐릭터로의 출연작은 한편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뭐.. 아무튼.. 실로 오랜만에 현실의 피곤함을 잊고 낭만속에 푹 빠져들어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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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딸
마크 탭 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이것은 실화라서 더 두렵고 끔찍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책을 보는 내내 혼란스럽고 쉬이 넘길 수 없었던 부분이 보편적인 상식 이상의 종교색이었다.

언젠가 지인이 암으로 돌아가신 친구의 어머님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상주인 친구 분이
너무 기쁜 표정으로 앉아있어서 섬뜩하게 느끼고는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따지듯이 물어봤다고 한다.
그때 그분께선 “어머님은 주님 곁으로 가셨으니 불행할건 또 뭐냐.”라고 하셨다는데,
솔직히 그런 부분들은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천수를 누리다 가신 것도 아니고 어렵고 힘든 사건으로 안타깝게 가셨는데…….
헌데 이 책에선 그런 느낌이 꽤 강하게 묻어났다.

심지어 사건의 주인공은 이제 대학에 들어간 아주 파릇한 나이의 젊은 아가씨다.





하지만 완독을 하고 나서는 이 책이 기독교 브랜드의 출판사에서 배본된 책이며,
종교의 힘으로 여러 가지 아픔들을 극복한 가정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딸이 살아 돌아왔다는(다른 한쪽은 순식간에 잃고 말았지만) 결과가 있는 만큼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그게 싫다면 애초에 펼쳐들지를 말았어야 하는 거니까,
누가 날 교회에 구금이라도 하겠다며 억지로 속여 보게 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게다가 미국의 이야기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보편화된 기독교적 문화를 바탕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두 딸이 서로 뒤바뀐 가정은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견고하고 돈독했던 대표적인 가정이었다.
문득 여기까지 쓰다 보니 학창시절 꽤나 감동받아 읽었던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마 이 책은 미국판 <지선아 사랑해>라는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이지선씨는 세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동정 아닌 동정의 시선이 너무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생각 없이 던지던 “어떻게 그러고 사느냐…”는 말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그러고도 삽니다.”라고, 나는 아마 그때, 이런 게 신앙이라면 나도 이런 마음을 배우고 싶어서라도
교회에 열심히 나가보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그런 내용을 접하며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더 많은 것을 원하던 철없는 시절의 나는 눈물을 꽤나 흘렸다.

그리고 이번 <뒤바뀐 딸>을 읽으며 살아 돌아온 휘트니가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믿지 못할 소식을 전해 들으며 놀란 아버지 느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구절에서 또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우리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씀 드린게 대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정말 부끄럽고도 가슴 아팠다.






실제 이야기 속 주인공 휘트니와 로라는 만신창이가 될 정도의 사고라면 부모라도 못 알아 볼 만큼 많이 닮았다.




세상 사람들이 각자 다른 외모와 성격을 지니고 살아가듯이 그들이 지니는 가치관과 신념도 모두 제각각이다.
신앙에 의지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의연함을 갖춘다고 해서,
그 부분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감히 비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행복하고 평온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법,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
그것은 배려가 아닌 당연함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배웠다.

마치 세상의 모든 깨우침을 얻은 양, 어린 시절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즐거운 추억들을 안겨주었던 교회를 떠난 지 어느새 4년째 접어들었다.

지금의 나는 이런 감동과 교훈을 얻고도 아직까지는
그 어린 시절 순수했던 신앙을 되찾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만큼 뒤틀려버린 우리 한국사회 속 교회의 위신과 내가 직접 발견한 그것들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번 주 만큼은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가까운 예배당에 가서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찬송을 부르고 마음을 다한 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끓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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