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 상권
줄리에트 모리오 지음, 유정희 옮김 / 가리온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명성황후는 뮤지컬과 드라마 등으로 상당히 많이 부각되고 재조명되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프랑스 사람이 그 명성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기에 처음에는 놀라움이 앞섰고, 또 궁금증도 일었다.

서양인이 동양의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한 것은 이 책 말고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궁금증이 일었던 듯 하다.

특별히 명성황후란 인물에 대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TV에서나 다른 역사책에서나 꽤 비중있게 다뤄졌기 때문에 웬만큼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이 우리나라를 다루고 있지만은 일단 프랑스어로 씌여졌고, 그것이 다시 번역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게 되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걱정스러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 책의 대상독자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약간의 역사적 사실의 덧붙임이라든지 흥미를 위한 장면 등은 어쩔 수 없었노라고 말하고 있다. 일종의 변명일까?

실제로 책에서 그런 부분은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좀 선정적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역사를 심하게 왜곡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시대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잡아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여전히 야사에서 빌려온 듯한 로맨스는 있었지만. 호위대장인 홍가와의 일화같은 것들.

이 소설은 1인칭이다. 명성황후 자신이 화자이자 주인공의 위치를 겸하고 있는데, 소설의 형식은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그 날 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세자(순종)에게 자신의 삶을 편지로 남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1인칭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시선인데 확실히 그렇기는 하다. 작가가 명성황후 그 자신이 되어서 써 내려간 듯한 느낌을 받는데 당연히 시선은 그 명성황후―왕후의 시선―의 시선이다. 의도한 것이겠지만 계급의식과 대원군에 대한 반감, 세자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같은 것이 잘 느껴졌다. 사실 왕비가 평민들과 같은 눈으로 보고 느낀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 시대는 계급이 무너지기는 하지만 아직 왕족이 있는 시대였으므로.

대원군이 너무 악하게만 그려져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사 속에서 실제로 명성황후와 대원군은 대립적인 관계였고, 서로 반목했으므로 명성황후가 1인칭 주인공인 소설에서 대원군은 그런 식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명성황후의 삶 역시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나는 유럽 중세의 역사를 상당히 좋아했는데―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사실들이라서―명성황후의 삶 또한 그것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하고 어쩌면 비현실적이었다. 쉽게 줄이면 신데렐라 스토리. 동화처럼 '그래서 그들은 잘 먹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다르지만.

명성황후가 주인공이 되어 있지만 소설 속에서 꼭 선인(善人)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매력이다. 야망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과(이것만 보면 굉장한 악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을 가지는 인간적이고 약간은 연약한 모습. 그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려진 명성황후와 실제의 역사적 인물은 거의 다른 사람이겠지만 책에서의 모습만 하더라도 굉장히 입체적이고 생명력이 넘쳤다. 쇠퇴해가는 나라의 왕비로서 여러 가지로 힘을 쓰는 모습(비록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았지만), 그 나라의 국민들과 자신의 아들인 세자와 남편인 왕에 대한 넘치는 사랑, 그리고 완벽하지만은 않은 그래서 더욱 인간적인 모습 등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한 소설 속의 명성황후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기에 한동안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덧말 : 옛날에 나온 '운현궁'이란 책을 제목만 바꿔서 다시 낸 것 같은데 제목은 이전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아마도 그 제목이 원제였을텐데. '명성황후'란 제목은 너무 직설적이다. 책 내용을 알리는데는 더 용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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