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음란과 폭력 - 성을 통해 본 인간 본능의 역사 한길 히스토리아 7
한스 페터 뒤르 지음, 최상안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대부분의 독서생활이 장르소설에 치우쳐있는지라, 사고전환을 위해 빌렸던 책이다. 가끔 읽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소설보다 인문학서를 읽을 때 저자에게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인문학서는 소설과 달리 저자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는 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란과 폭력"의 경우, 서문을 펼친 순간부터 머릿속으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독서 내내 정신차리고 읽었으니 다행은 다행이다. 한길사의 HISTORY 시리즈가 어떤 테마로 엮여진 시리즈인지도 잘 모르고, 작가가 계속 반박하는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에(그래, 무식이 죄다) 책을 읽는 내내 등장하는 엘리아스에 대한 반박이 짜증스러웠다. 이 책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선 사실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을 세트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책은 전체적으로 조금 산만하다. 그러모은 자료들을 각 챕터에 맞춰 흩어놓았는데, 실상 챕터의 테마와 걸맞는지 걸맞지 않은지도 명확하지 않은 자료들도 있다. 자료만 늘어놓은 챕터와 저자의 해석이 곁들여진 챕터가 있어, 줄기를 따라가기가 힘든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웬만한 책 한권 분량인 300페이지의 후주도 조금 불편했다. 주 부분에 중요한 글들이 많아 빼놓고 지나갈 수도 없었기에 불편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쉴새 없이 나오는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에 대한 반박은 저자의 반박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의 단점만 늘어놓았는데, 물론 장점이 더 많았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중후반부부터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학대에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도 서두는 "일반적으로 <문명화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성폭력 발생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그 주제를 넘어 여성에 대한 처참한 성폭력행위에 대한 사실을 기술하는데 할애한다.
2차대전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이 그들이 구출해준 상대에 의해 다시 폭행당했다는 사실이나, 이를 고발한 유대인 여성이 그 장교에게 다시 강간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임신부거나 미성년일수록 그들의 새디즘적 충동이 폭발했다는 언급. 1978년의 미군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군장교 34%와 하급장교 44%가 성폭행위험 때문에 전투부대 배치를 꺼린다고 응답했다는 현실. 그리고 이러한 처참한 일들이 2000년대에 들어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세계는 하루라도 전쟁을 쉰 날이 없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어느 전쟁터에선가 무고한 여성이 이렇게 폭행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런 현실들에 눈 감고 살고 싶은 마음 그득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현실로 깨닫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p.s.
전체적으로 저자의 시선은 정치적으로 공정한 편(그러기 위해 쓴 책이고)인데, 읽고 나니 어쩐지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이 남는다. 왜 '성'문제를 다루는 데는 여성의 몸 이야기가 80%이상을 차지할수밖에 없는가. 물론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15년 동안 수집했다는 자료들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등장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여성의 몸이 대상화된 존재라는 것이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 현실이 불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성'은 남성과 여성이 공통으로 관련된 분야고, 실상 '성'에 대한 관심도는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도 '성'하면 남성의 페니스보다 여성의 질을 떠올린다. 남성중심사회인 이 사회에선 남성이 관심을 가지는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상보다 주체를 더 중요하게 분석하고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남성들은 '성'에 목숨을 거는지, 왜 '폭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볼 수 없을까?

문명화사회든 비문명사회든 여성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속박되거나 해방되거나 보호받거나 하는데 반해, 남성의 몸은 늘 똑같다. (성)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저지당할 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린사회의적 2004-08-1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님의 서평을 보면 분명...어수선한 부분이 있는 듯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하지만 하지만 그의 수고와 ooo그라피라는 사진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하~~
 
제인 에어 납치사건
재스퍼 포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어떤 창작물에 대해 감상이나 리뷰를 쓰는 일은 왜 그리 힘든 일일까. 직업상 리뷰가 숙제가 되는 일이 빈번히 있는데도, 리뷰 쓰는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주 가끔 저절로 자판에 손이 갈 때가 있다. 이 책 <제인 에어 납치사건>을 읽고나서가 그랬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정신없이 독파를 하고 나니, 몇 년 전에 이영수의 <면세구역>을 읽고 느꼈던 감동과 비슷한 감동이 찾아왔다. 요 몇 년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책들에 재미를 못 느껴서 그런지, 그 감동은 정말 컸다. 그래, 내 감성이 무뎌진 게 아니었어! 라는 기쁨을 느꼈다고 할까?

<제인 에어 납치사건>의 장르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추리소설의 성격도 띠면서, SF적인 배경설정에 뱀파이어 소설의 냄새까지 풍긴다. 소위 말하는 퓨전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내 나름대로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나 <멋진 징조들>과 같은 계열의 장르짬뽕 따발총 수다집이라고 정의했지만.

<제인 에어 납치사건>의 배경이 되는 세계는 1980년대 영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80년대가 아니라, 다른 평행세계 속의 장소다. 그곳은 예술과 작가가 최고 가치로 인정받는 곳이며, 아직도 크림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시간경비대라는 특수요원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주인공 서즈데이 넥스트는 특작망이라는 우리세계의 FBI와 비슷한 곳에 소속한 퇴역군인이다.

자 이제, 이 즐거운 설정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제목이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니 제인 에어가 납치되겠지?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제인 에어가 납치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물론 중간 중간 로체스터가 등장하고 소설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곧 납치사건이 벌어질 거라는 분위기는 풍기지만, 정작 제인 에어는 후반부에 가서야 납치된다. 그래선지 중반부까지보다 제인 에어가 등장하는 후반부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즐겁다. 정말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해야 할까. 특히 서즈데이가 책 <제인 에어>속에 들어가 모험(이라기엔 좀 얌전하지만)을 벌이는 부분은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유머들. 소설을 여행하는 패키지여행을 만들어낸 일본인이라든가, 원본이 아닌 인쇄물에 들어간 잭 시트의 시, 중간 중간 뜬금없이 등장하는 시간여행자 서즈데이의 아버지 이야기 등등이 양념 역할을 하며 독자를 즐겁게 한다.

물론 이처럼 가벼우면서도 재기발랄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즐거운 책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흐지부지한 끝마무리를 보이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마침표를 찍는다. 앞으로 재스퍼 포드의 책이 얼마나 더 번역돼 나올지 알 수 없으나, 나온다면 예약해서라도 살 것 같다.

마지막으로 문학과 관련한 인용이나 패러디가 많긴 하지만, 꼭 각주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다. 엄청난 독서가가 아닌 사람도 즐길 수 있다는 부분이 이 책의 미덕이기도 한데. 숱하게 달린 각주들이 쉬운 소설을 어렵게 보이게 만든다는 걸 생각하면, 이 책의 각주는 책의 미덕을 실추시키는 대실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