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다음에도 사랑은 존재하는가
Daphne Rose Kingma 지음, 이희 옮김 / 학지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왜 사랑에 빠질까? 이 책의 저자 Daphne Rose Kingma는 ‘우리의 외적, 내적 발달과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발달과업’이란 말이 무슨 ‘역사적 사명’처럼 어렵게 들리지만, 그 속뜻은 아주 쉽다. 사람은 평생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 자기정의 또는 자기발견의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랑’을 ‘relationship’이라고 표현했고, 번역자는 ‘애정’으로 표현했지만, 이해하기 쉽게 그냥 ‘사랑’으로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어쨌든 이 사랑이 우리가 한 사람을 선택하고 선택받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좋은 사랑은 ‘서로가 거의 같은 양의 도움을 주고받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에는 반하는 주장이지만, 실제 ‘마술적 우산’ 아래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외적 발달과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내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그가 내가 부족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메워 주었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력이든, 외모이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상대방이 채워주는 것이다.

‘내적 발달과업’은 무엇인가? 유년기에 정서적 결핍이나 정신적 상처 등이다. 그래서 무슨 것을 다 해결해주는 오빠같은 ‘남친’을 원하거나, 칭찬받고 사랑받고 주목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해준 엄마같은 ‘여친’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이 영원할까? 사람들이 겪는 감정적 고통 중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 다음으로 가장 어려운 것이 ‘이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한다. 헤어지기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다.

저자는 ‘사랑은 영원하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는 강력한 신화가 결국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늘 같이 영화를 함께 보고, 같이 외식하고, 같이 교회를 가며, 직장에서 재수 없었던 일을 함께 나누길 원하고, 자신이 힘든 것을 다 알아주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의 욕구의 95%가 충족되기를 상대방에게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이 동료애와 오락을 제공해 주고,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자극이 되어 주며 신체적 위로와 성적 만족까지 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누구든 그 모든 것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첫눈에 반해서 그 모든 것을 해줄 것만 같은 상대방도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고, 알면 알수록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랑이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아직도 마술과 신비가 있는, 아직 낭만이 살아 있는 한 구역으로 붙들어 두고 싶어한다. 비록 사랑이 미술과 낭만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하지만, 그렇게 보든 말든 우리가 매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이 더 깊은 진실이다.”

저자는 부부치료 전문가답게 이 목적을 달성한 이후의 삶,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사랑은 일생에 단 한 번만 오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별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깊은 친밀함으로의 초대이고, 사랑의 끝은 우리 자신을 되찾고 우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바꿔놓은 친밀함에서 물러나 우리가 그 안에서 얻은 것들을 소화할 기회”라고.

그래서 이별을 겪으면서 자긍심의 위기를 이겨내고, 자아를 회복하며, 직업을 바꾸고, 창조성이 되살아나고, 체형이 좋아지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그야말로 사람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는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이별을 하고 마음이 정리되려면 부정의 단계, 눈물과 격노의 단계, 비난의 단계, 협상의 단계, 자기 채찍질의 단계를 지나야 하며, 연결의 마지막 가닥이 끊어졌다는 자각의 순간을 지나면 드디어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5가지의 이별 연습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상적으로는 마음의 정리를 사랑한 상대와 함께 ‘이별식’을 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혼자서라도 이별을 위한 ‘통과의례’를 통해서 감정적 해소의 과정을 거치라고 조언한다.


아직도 지난 사랑에 대한 정리를 하지 못한 독자라면 이 책에서 권하는 이별 의식을 해보자. 이 책에 따르면, 예순이 넘은 사람은 27살에 끝낸 결혼생활에 대한 감정을 해소하려고 참아온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사랑의 상처를 대수롭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또 이별 후에 홀로 서기 위한 방법들도 제시하고 있다. 내 삶을 붙들어 주던 유일한 것, 즉 사랑이 가버렸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자기 삶의 자원들을 확인해 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것은 지금까지 익숙해서 편안했던 버릇 -모닝 커피, 금요일 밤 친구와 함께 하는 술 한 잔, 침대에서 먹는 아침, 저녁 산책-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또 옛 친구이거나, 새로운 친구이거나,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색다른 일, 즉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 여행 등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새롭게 자각하고, 자신의 새로운 방향을 반영하는 새로운 친구들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준다.

자, 사랑에 상처입은 사람들이여! 더 이상 그 상처로 아파하지 마시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이제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라. 또 이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겁먹지 말자.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랑은 끝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자, 스스로를 채워가는 과정이니까!

(사진 설명 - 영화 <행복>. 간경변인 영수(황정민)와 심장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은 은희(임수정)의 사랑은 ‘치료’와 ‘살아있는 동안의 사랑’이란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별은 그 필요를 영수가 먼저 충족시킨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새로운 단계의 사랑을 원한 영수이기에 ‘지겨워졌다’는 그의 말은 더 가슴아프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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