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 43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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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오늘의 젊은 작가43


장진영 장편소설

민음사 출판




 

 

장진영작가의 『취미는 사생활』 소설은 사회적 문제임에도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었다. 이번 『치치새가 사는 숲』은 책 제목만으로 작고 아름다운 새가 노래할 것 같았지만 청소년 성폭력이라는 더 무거운 소재를 담고 있어서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 당혹스러웠지만 읽고 난 뒤에 여운이 아주 길게 남았다. 왠지 내가 책 속에서 놓친 것이 있을 것만 같아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억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소설은 서른 중반이 된 나와 과거 열네 살인 내가 교차하며 이야기한다.

 

간지러워 하는 '나'는 게가 되고 싶어 하는데, 나에게 언니는 계속 긁으면 피가나 딱지가 앉아 게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지 자매사이의 농담이 아니라 나는 자신을 외부로부터 지킬 수 있는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가 정말 필요했던 것 같다.

 

중학교. 열네 살. 소녀에게 예민한 시기이지만 부모의 돌봄이 부재였기에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아슬아슬한 나쁜 행동을 만들었고 연예인병으로 주목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시절의 떠올리면 부끄러웠던 행동들. 누군가 알까봐 숨겨두고 싶었던 과거들. 중학생의 철이 없다고 하기에 상대방이 상처받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미에게 잘 보이기위해 친구가 되기 위해 해야만했던 잘못된 행동은 모두가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폭력은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것은 잊은 건지 생각도 안한 건지 아이의 행동에 대해 상처주는 말들만 늘어놓을 뿐이다.

 

누가 될지 모르는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생각하며 예쁘게 쓴 내 마음 가득 적은 일기장이 사랑이라 착각하게 만든 폭력자로 인해 더 이상 펼칠 수 없는 추잡한 일기장으로 변모시켜버렸다.

 

그 시대는 일하기 바빠서 그러했다는 부모의 핑계는 부재에 의해 방임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정이있었다고 말하면 사랑에 목말랐던 아이가 폭력에 의해 자신이 품었던 치치새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잃었을 때의 슬픔은 알아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슬프다. 보호해야할 의무를 가진 보호자들이 결국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아이는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에 노출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 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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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치치림. 치치새가 사는 숲이라는 뜻이다. 치치새는 아주 진귀한 새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 새는 마음씨가 고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행운을 가져다준다. P7 - P7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P45 - P45

나는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 길에 껌을 안 뱉는 것처럼. 도덕은 내 비루한 자긍심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못생긴 여자아이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P50 - P50

내가 굉장하네, 하고 말했다. 언니가 반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네.’가 없었다면 언니와 나 둘 중 하나는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P62 - P62

"바람 쐐요,"

그러자 차장님이 창문을 내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나는 바람을 쐤다. 바람은 폭신하고 미지근했다. 춥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바람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깡촌 사람들은 내가 학주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P75 - P75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76 - P76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P91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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