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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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소설

문학동네

 


 

늘 똑같은 일상 속 느슨한 시간 사이를 비집고 과거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 것 같다. 후회보다는 그 시간들로 성장한 인물,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계급차이들을 이겨내 보고자 하는 인물, 흔들림은 있었지만 곧게 뻗어나가는 인물 등 포기하고 좌절하기 보다 다짐하고 용기내고자하는 마음들이 보였다.

 

📚시간의 궤적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서른 살 나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 어학원에서 대기업 주재원으로 파견나온 언니와 친해진다.

 

외부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말라고 말해주는 주인공의 말에 위안을 받는다. 나름 단단해지고 있다 생각해도 이런 말랑한 말한마디에 그냥 말랑해져 버린다. 타지에서 낯선 그들에게서 오는 거리감,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한데 섞이며 그리움이 더 커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로움도 흔적이 된다는 것.

 

그날 언니와 나눈 대화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P12

 

“괜찮아요, 언니.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응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P17



 

📚여름의 빌라

 

독일 정치사를 전공한 남편 지호와 일문학 전공한 나(주아)‘는 한스의 초대로 시엠레아프 여름의 빌라에 간다. 시간강사로 쫓기듯 사는 두 부부에게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 어쩌면 잘된 일이라 여기며 살았지만 여행에서 말못했던 감정이 터져버린다.

단순하게 관광객의 시선으로 그 사람들을, 역사를 바라보는 주아와 달리 지호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 않아도 될 일을 관광객들 때문이라 말한다. 이런 경계들을 어린 레오니가 캄보디아 소년을 대하는 방법을 보면서 다양한 계층들의 차이를 주아는 안다.

지호는 자신이 시간강사로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바라보는 것들이 불안정하고 고통 속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무無. 당신의 집 거실에 적혀 있던 글자처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P56

 


 

📚고요한 사건

 

서울에 처음 올라와 소금고개 동네 살 때 만난 해지와 무호.

재개발 말들이 돌고 고양이 밥을 주던 아저씨가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아버지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돕지 않는다.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러 문을 나서다 유리창 밖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감탄한다. 동네 멀리 보이던 아파트를 보면서 우리집도 저렇게 될 거라는 기대로 가득찼던 부모님은 자신들은 소금동네 사람들과 다르다는 선을 긋는다. 시간이 지나 나 역시 부모님이 바라던 희망이 아닌 그저 창밖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음을 눈을 보며 풍경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그때를 떠올리는 건 아닌지.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 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 몸에 한기가 깃들어 더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그제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 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 P94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P104

 

📚폭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고 나는 아빠와 함께 살며 2차성징이 시작되어도 물어볼 사람 없이 외롭고 당황해 하며 자란다. 미국에 케빈과 재혼한 엄마는 행복한 얼굴이다. 딸보다 자신의 인생을 더 우선시한 엄마.

엄마는 딸에게 취업보다 연애가 더 중요하다 말한다. 어릴 때 결혼해서 몰랐던 것일까. 사랑을 찾아간 엄마는.

 

그녀는 가끔 생각했다. 그녀가 엿봤던, 그날 밤의 그녀보다 겨우 네댓 살 더 많았을 뿐이었던 엄마의 얼굴, 사랑에 빠져버린 그 여자의 얼굴이 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에 대해서 말했더라면. 하지만 그 밤 그녀는 끝내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P138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둘째를 키우기 위해 퇴사 후 한나의 레스토랑 오픈에 초대된다. 아이만 보다가 오랜만의 외출이라 어색하기도 하고 설렘도 있다. 동네 빨간지붕을 부수어 골격만 남고 그 공사현장에서 앳되보이는 근육질 남자에게 한나 레스토랑에서 만난 남자 무용수를 떠올리며 알 수 없는 욕망에 휩싸인다. 아이 둘을 낳고 예전과 다른 몸, 일상 속 잠깐씩의 내적 욕구들과 부딪히는 우울함에 대한 이야기.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작은 자극에도 고무공처럼 튀어올랐다. P148

 


 

일찍 철이 든 척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P165

 

📚흑설탕 캔디

 

할머니와 동생과 프랑스에서 지냈던 시간들. 돌아가신 난실 할머니 일기장 속 내용.

언어가 통하지 않고 손자들도 아들도 자신들의 삶을 찾느라 바쁜 프랑스에서 브뤼니에 씨를 만나 피아노를 치고 차를 마시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던 할머니는 브뤼니에 할아버지가 각설탕을 높이 쌓아 올리며 박수치고 무너진 각설탕을 집어 먹고 아주 오래 전 처음 느꼈던 달콤한 흑설탕 캔디를 떠올린다. 손바닥에 내리쬔 햇빛만큼의 행복은 할머니도 갖고 싶었을 꺼라고.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그대로인데 육체는 따라주지 않음에 대한 슬픔이 느껴졌던 소설.

 

말하자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사이에 존재할 법한 달콤하고 아늑한 유대감 같은 것.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일 년쯤이 지나면 나와 동생은 낯선 환경을 거부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생활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단계로 접어들어버린다. P181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 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 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P198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낯선 섬에 홀로 표착한 것 같았던 할머니의 일생이나, 하루가 너무 길 때마다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신에게 간구하지만, 막상 죽름 이후를 상상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공포에 대해서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듯. P201

 

📚 아주 잠깐 동안에

 

아내 여주와 행복한 신혼생활. 아내는 모든 것을 이해해 줄 것 같이 너그러웠고, 그도 착실하게 돈을 모아 안전하고 보기 좋은 집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 모든 노력은 불안함에서 시작된 것이였기에.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고 집으로 가는 중 리어카를 끄는 노인을 만났고 술안주를 만들어놓고 미드를 함께 볼 생각에 지나칠 까 생각했지만 그는 노인을 돕기로 한다. 경사 진 비탈길에서 노인의 리어카를 끌다 실려져 있던 냉장고가 미끄러지며 노인을 덮쳤고 괜찮다며 노인은 돌아갔지만, 그 이후 노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노인을 돕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노인의 상태를 확인했다면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삶 속에서 그 남자의 두려움은 늘어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여주에게도, 사실은 그날 밤, 달빛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그저 좋았던 그 밤, 아주 잠깐 동안, 그러니까 세탁기를 들어올리고 쓰러져 있던 노인을 일으켜세우던 그 짧은 순간에, 그가 그 모든 상황을 귀찮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P233

 

📚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엄격했던 엄마. 쉽게 주눅 들 수 밖에 없었던 나.

모범적인 나와 선주. 우리와 반대인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다미와 호기심을 공유하며 둘만의 친밀함을 나눈다. 우연히 다미의 친구를 만나고 좋아하는 마음도 없지만 분위기로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어떤 남자아이에게 첫 입맞춤을 한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학원을 빠지고 남자아이들을 만나는 하루의 일탈을 주인공 '나'를 통해 가마득한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신체가 낯설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며, 이제 어른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희열감에 과하게 들떠 있던 아이들. P241

 

문득 나는 내가 교복을 입고 그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날들로부터 그리 많이 멀어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P265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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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 당신의 집 거실에 적혀 있던 글자처럼, 사실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미욱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하기를 번번이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걸까요. -여름의빌라 - P56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작은 자극에도 고무공처럼 튀어올랐다.-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 P148

문득 나는 내가 교복을 입고 그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날들로부터 그리 많이 멀어지지 않은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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