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출판



 

음악과 함께 떠오른 사람들. 상실과 고통의 경험. 갑자기 떠난 사람들로 텅 빈자리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 내야하는 외로움이 느껴진 소설들이었다. (하루키 작가의 변태스러움이 중간 중간 나오지만 순수한 인간의 욕망을 담은 것이라 생각하며 읽어봅니다^^;; ) 모든 화자는 남자라서 그런지 고독, 술과 여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들에 대해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들도 보였고,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긴장감으로 버티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면서도 교양적이다. 반면에 난잡한 여자관계들로 인해 벌을 받는 듯 본인들이 걷어차이거나 버림받는 걸로 불행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소설 속 인물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클래식, 팝, 재즈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지식을 갖고 있다. 교양적이다.

연극배우인 가후쿠씨는 여자 운전사 마사키를 고용한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이 뭔가의 불안도 아닌 편안도 아닌 신경쓰인다는 사람이 말이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지만 왜 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자 아내의 남자와 친구가 되어보기도 한다. 결국엔 뭐든 다 이해 안되는 일 투성이지만.

(뭉그적, 헤싱헤싱 적확했다는 표현들이 좋았던 소설)

 

가후쿠는 프로 배우였다.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 타인을 연기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리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연기했다. 관객이 없는 연기를. P28

 

 

📚 <예스터데이>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르던 기타루를 기억해서 쓴 글이다.

기타루는 덴엔초후에서 태어나 내내 거기서 자랐지만 간사이 사투리를 외국어 배우듯 악센트까지 외워 습득했다. 야구 커뮤니티에 잘 어울리기 위해서.. 참 이런 특이한 인물들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 주변에도 있을 법하고) 재미있는 건 화자도 나와 같은 시점으로 소설 속 인물을 독특하게 바라본다는 것.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 듯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한신 타이거스 광팬이라서 도쿄에서 한신시합이 있으면 꼭 보러 갔는데, 세로줄무늬 한신 유니폼 입고 외야 응원석에 가봤자 도쿄 말을 써버리면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더라고.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이거 간사이 사투리를 배워야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야말로 피눈물 나게 고생해가면서 공부했지." P66

 

아무튼 전부 없었던 일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도쿄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간사이 사투리를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 것이란,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또한 상징적인) 수단이었다. 결국 내가 하는 말이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니까. 적어도 열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69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P112



 

📚 <독립기관>

 

의사인 도카이는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는 부류의 사람’ 이라고 시작하는데, 이런 굴곡은 사실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불안감과 충족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여러 여자들과 만남을 갖거나 나름 만족하다고 할 수 있는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몸만 남는다는 상상도하며 사는 인물은 남에게 보이는 삶을 오히려 중요하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든다. 이 모든 것이 상사병으로 인한 것이고, 어이없는 죽음이지만 화자는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며 편협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말한다. 여자가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기관이 그렇게 했다며 옹호하지만 이미 읽고 있는 여자 독자인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화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흠흠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P142



 

📚 <셰에라자드>

 

하바라는 셰에라자드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에 대해 기록한다. 그 여자는 칠성장어였다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자신이 물고기였다는 건 왜 인지 아직도 이해는 안된다ㅠㅠ)와 십대 때 빈집털이 했던 이야기를 한다. 좋아했던 같은 반 남학생의 집에서 연필을 훔치고 자신의 탐폰을 두고 오고, 다음번엔 남학생의 축구공 배지를 가져오고 자신의 머리카락 세 올을 책 속에 끼워둔다. 특이한 여자이지만 하바라는 이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언젠가 끝이 날 것을 아는 관계이지만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은 서로에게 친밀한 시간이라는 것을 하바라는 안다.

 

 

열일곱 살의 내가 그의 어떤 점에 그토록 깊이 빠졌었는지, 그것조차 잘 생각나지 않아.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그게 나의 ‘빈집털이 시대’ 이야기야. P21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P214

 

📚<기노>

 

아내의 외도로 ‘기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골목 안쪽의 작은 술집을 운영하게 된다.

의문의 가미타 손님은 늘 혼자 오고 책을 읽는다. 뱀이 나타나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는 기노의 이야기부터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마주하고 거쳐야할 고통을 피하기만 했던 과거에서 아직도 기노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돌아갈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P265

 

📚<사랑하는 잠자>

 

눈을 떠보니 자신은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해 있다. 어딘지도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의 자물쇠를 수리하러 온 꼽추의 몸인 수리공 여자를 보고 성적 욕망을 느낀다. 밖은 전쟁통처럼 사람도 없고 검문과 탱크, 외국병사가 가득하니 조심하라고 말하며.. 이 잠자라는 사람은 전쟁 중에 정신줄을 놓은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영혼이 들어온 것인지. 어려운 소설;;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P308

 

📚<여자 없는 남자>

 

사귄 여자 3명이 죽고, 죽은 여자의 남편은 나를 어떻게 알고 그녀의 부고를 전했는지 궁금하다. 소식을 전하는 남편은 말과 말 사이에 스페이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본인도 그 소식에 표현을 멈춰버린 침묵 상태다.

열네 살 때 만난 엠. 이름 없는 세 번째 여자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 했고, 잃어버린 여자를 남편과 그 여자와 얽혔던 남자들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 듯하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ㅡ십억 년은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리라ㅡ빼앗겨버리는 것. 저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 지와 무지 사이 임의의 중간지점에서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하며 메마른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는 것. P327-328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P332

 

#여자없는남자들 #무라카미하루키 #단편소설 #문학동네 #북클럽문학동네 #앰버서더 #독파 #독파챌린지 #완독 #가을독서 #외로운소설 #가을에어울리는소설 #책스타그램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음악에는 그렇듯 기억을 생생하게, 때로는 가슴 아플 만큼 극명하게 환기해내는 효용성이 있다. - P112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비통하고 또 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 P118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 P140

만일 내가 어떤 이유로든ㅡ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ㅡ지금의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끌어내려져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그저 번호뿐인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 P142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 P214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 P265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 P3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