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칼의 노래』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출판

 

10년 전 읽고 잊어버렸던 내용을 독파 챌린지로 다시 읽었다. 김훈 작가님의 문체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먼 거리감이 있는데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이상하게 그 감정들은 문장을 따라 전해왔다.

 

소설은 칼의 울음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로 시작한다.

적을 베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 자신의 상징성을 위해 적 가토의 머리를 바치기 바라는 임금은 평양을 거처 의주까지 달아났다. 임금은 용맹한 장수, 강한 신하를 두려워해 때려죽이고 쳐죽이고 고문시켜 죽였다. 적이 오고 무너지는 전장을 지켰던 백성들을 적으로 대했어야 했을까. 정치도 자신의 자리도 그렇게 지켰어야 했을까. 읽으면서 그들이 속으로 삭혔어야 할 울분이 느껴져서 나도 함께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아무래도 그 시대 태어났다면 온전한 내 명대로 살긴 힘들었을듯 ㅎㅎ)

 

의금부 형틀에서의 심문은 무엇을 위해 그리 이순신장군을 고통으로 내몰았는지 헛것을 쫓고 있는 그들이 가엾다고 표현했다. 임금이 장군을 죽이면 적이 오니 죽일 수 없고 적 때문에 이순신은 살아났다. 정치를 모르는 아둔한 자신을 부끄럽지 않아했고,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그들에게 분노하기 보다, 적의 미친 광狂을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힘이 없는 것에 더 집중했다.

 

기어코 일본놈들은 셋째아들 면이를 죽였다.

아들의 부고를 듣고 몰래 숨어 울어야만 했던 이순신장군도 아버지였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도, 도굴된 선왕들의 무덤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올리던 왕도, 모두 울음이 끊이지 않는다. 머리와 코가 잘린 백성들의 시체들이 수도 없이 쌓이고 먹을 게 없어 아이를 잡아먹는 사람들을 보며 이순신 장군은 몸속의 울음, 슬픔을 칼을 갈며 마음을 다잡는 듯하다.

 

끝도 없이 다가오는 적과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어죽고 이질에 걸려죽는 백성들의 죽음도 끝이 없다. 언제 이 이야기가 끝나는지 한숨나올 정도로 고통과 막막함뿐인 시간 속에서 죽기만을 바라고 있을 수는 없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 더욱 슬펐다. 우수영을 떠난다고 했을 때 백성들은 모두 짐을 꾸리고 뗏목을 타며 이순신장군을 따랐다. 임금보다 자기 자신을 이순신에게 맡겼던 백성들은 자식모두 잃고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울부짓으며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이 있을지 생각할 수는 있었을까. 암울했다.

 

이순신 장군의 감정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난중일기를 들추어본 것 같았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을 눈에 보이는 자연에서 찾은 문장들이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 듯하다. 이렇게라도 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밝음을 붙잡았었길 생각해본다.

 

어둠 속에서 안개는 무겁게 가라앉았다.(P250)

누운 몸이 물결에 흔들렸다.(P257)

나는 달빛에 젖어 잠들었다.(P257)

해 지는 쪽 하늘에서 붉은 노을과 검은 노을이 어지럽게 뒤엉켰다.(P266)

 

부하들이 목이 잘린 얼굴의 눈과 마추진 그 장면, 적군인지 포로인지 소금에 절여진 쭈글해져 나이조차 가늠이 안되는 얼굴은 아무리 전쟁이다 할지라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몸이 움직이는 데로 하지 않으면 미쳐버렸을 것 같은 상황들이 많았다. 이순신장군은 삼시세끼 밥을 다 먹었다. ‘말없이 그냥 먹었다’는 부분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그들이 내게 준 위치는 밥벌이를 하라고 만든 자리이니 살아 바다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김훈 작가님이 프강페 줌토크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강연에 불려 나오셨다는 말씀...지긋지긋하다는 밥벌이 말씀과 함께ㅋㅋㅋ)

 

소설은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 노량의 물결은 사나웠다." 로 끝이 났고, 이순신장군은 끝없이 밀려드는 적군들은 미칠 광狂자를 쓸만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저렇게 목숨을 바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임금에 의해 무의미하게 죽기보다 전장에서 수긍할 수 있는,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자연사로 기록되더라도 죽음의 방식을 본인은 적에 의해 죽음을 원했다. 그렇게 바다에서 칼의 노래는 멈췄다.


 


 


 


-----------


🔖 책 속 밑줄긋기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뻣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P17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P28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P42

 

히데요시는 그러하되, 물 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 이나 무武 라기보다는 광狂 에 가까웠다. P63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P117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둘 곳 없었다. P121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P209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 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P264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P314

 

----------------

 

■ <프리미엄 강연 페스티벌(프강페)_ 2023.09.09. 오후 4시>

김훈 작가, 전종환 아나운서의 케미가 아주 아주 돋보였던 강연이 있었어요.



 

작가님의 글에 대한 생각, 연필을 쓰는 이유, 가장 신명나게 말씀하신 <자전거 여행> 책 내용 등 강연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아주 사적인 내용들이 많아 작가님께 한발짝 더 다가선 느낌입니다^^

아래는 작가님 말씀 중 제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 일부를 기록했어요.

 

----

 

영감은 즐겁지만 써야한다는 것은 노동이다. 산문의 문체는 헐겁고 소설보다 좀 가볍다. 기사출신이란 점이 소설에서의 영향은 제로리스적이다. 6하 원칙의 글, 정보, 사실만을 논리적으로 배열한 글은 좋다. 강력하고 순결하고 조준점이 분명하다. 소설, 에세이에 도입하려 노력한다. 그런 문체, 스트레이트 문체는 좋아한다. 뼈, 틀만 갖고 글을 쓸 때 지나친 해석, 논평보다 그냥 쓰자.

수다를 떨지말자.

해석늘 너무하지 말자.

핵심만 가져가자.

 

헐거웠다는 말을 자주 쓰시는 작가님.

밥과 노동, 글쓰기.

밥벌이의 지겨움, 가장 인간에게 친숙하고 인간의 정서에 깊이 각인이 되는 것이다. 밥과 맛에 대한 느낌이 각인되어 있다. 헐거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김훈체. 집을 짓는 것처럼 하나의 문장 안에 집 전체가 들어가게 해야 한다.

길어지면 산만, 수다, 흐트러진다. 깔끔, 단정한 문장을 쓰기로 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공간이 넓어지면 논리적으로 해석 안되서 독자가 허당에 빠진다. 전압 연결이 안된다. 공백이 많으면 전달이 안 되어 조정해 가면서 쓴다. 내공이 없는데 단문을 쓰면 헛헛한데 균형을 잡는게 중요하다.

 

글을 써서 이 세상을 바꾸고,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 내면을, 인간을 구원하는 행위이다. 글의 힘을 믿는자들의 진실상을 믿는다. 나는 큰 소망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남에게 이해받길 원하고 이해결과로 인간을 구성하는 조건으로부터 인간이 풀려나 느슨해지고 헐거워지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면에서 친절하지 않다.

 

연필은 진하고 미끄럽지 않은 것, 저항감 있는 연필을 쓰고, 흐리고 눈이 편한 원고지 칸을 쓴다. 책은 고전은 아니지만 세월에 의해 테스트를 받고, 무서운 풍화작용을 거친 책, 세월이 지난 것을 읽는다. 낙후되었지만 아름다움이 있다.

 

아날로그의 언어적 개념을 모르겠다. 직접적인 것이고, ‘만들다’, ‘하다’ 이 동사들은 아날로그의 동사이다. 동사는 아날로그였다.(아직도 이 설명은 어렵습니다...;;;)

디지털은 기호, 정보, 기계, 영상이 개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간접적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글쓰기 시작은 쉽게, 결론까지 토탈 플랜으로 해야한다.

의문으로, 망설임으로 끝나도 된다.

나와 가까운 언어를 가져오는 게 좋다. 멀리, 큰 언어, 개념어는 표현력이 무뎌지고 개념에 의지하게 되어, 글은 멀어진다.

 

--------

 

#칼의노래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이순신 #독파 #북클럽문학동네 #프리미엄강연 #독파챌린지 #완독챌린지 #앰버서더3기 #앰버서더 #스테디셀러 #책추천 #서평

 

❤︎ 독파 앰버서더 3기로 ‘문학동네’로부터 도서지원 받았습니다.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 나는 임금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함대를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각 기소되었다. 권율이 나를 기소했고 비변사 문인 관료들은 나를 집요하게 탄핵했다. 서울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는 동안 나는 나를 기소한 자와 탄핵한 자들이 누구였던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에 아둔했으나 나의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 P28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 P42

히데요시는 그러하되, 물 위에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어가며 파도처럼 달려드는 그 무수한 적병들의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죽음의 물결은 충忠 이나 무武 라기보다는 광狂 에 가까웠다. - P63

한산 통제영에서 장계를 쓰던 임진년의 여름밤은 달이 밝았다. 나는 내 무인된 운명을 깊이 시름하였다. 한 자루의 칼과 더불어 나는 포위되어 있었고 세상의 덫에 걸려 있었지만, 이 세상의 칼로 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덫을 칠 수는 없었다. - P117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둘 곳 없었다. - P121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 P209

그 개별성 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내가 그 개별성 앞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나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나는 칼을 버리고 저 병신년 이후의 곽재우처럼 안개 내린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개울물을 퍼 먹는 신선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적은 적의 개별성이었다. 울음을 우는 포로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 P264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 P3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