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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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산문집

난다 출판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의 첫 산문집으로 2013년 초판 발행되고 2023년 39쇄를 찍었다. 책은 4년 동안 한겨레신문에, 그리고 2000년대 초엽에 국민 일보에 실었던 칼럼이 주를 이루고 있고, 80년대와 90년대에 썼던 글도 여러 편 들어 있다.

 

작가는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향한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표지는 화가 ‘팀 아이텔’의 작품으로 깜깜한 밤,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가는 뒷모습은 책의 내용과 닮았다. 책에는 마음에 담겨있던 이야기가 많았는데 밝은 곳에서는 꺼내볼 수 없는, 우리가 외면했고 어쩌면 답답해했던,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알아야하는 이야기이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들려주는 것 같았다.

 

 

🔖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P12)

 

🔖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P27)

 

 


 

사회의 부조리와 국민 입장에서 열불나는 이야기(정치색이 조금 담긴)를 글로 항변하듯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향, 유년시절, 풍경 등의 사진을 보며 추억하고, 해석도 하고 떠오른 시, 노래, 소설, 영화의 내용을 책 속에 담았다.

 

작가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만 추구하는 삶에 대하여 따끔하게 지적한다.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깊이를 지녀야함인데 그렇지 않은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고 ㅠㅠ 책을 읽어야 비로소 이런 깊이는 깨닫게 되는 것 같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는 그냥 책을 읽으면 좋다가 아니라 이렇게 저마다의 깊이를 알도록 책을 들고 펼치도록 만든다. 폴 오스터의 긴 소설 『달의 궁전』의 "나는 그 달이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눈 한 번 떼지 않고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장처럼 달이 사라지는 모습을 예전처럼 언덕에서 볼 수 없지만 그 자리라도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살자고 했다. 깊어지는 가을에는 이런 소설이라도 읽으면서 살자는 말과 함께.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보다 우연히 책을 읽다 발견한 좋은 문장으로 책을 접하게 되는 때가 요즘 종종 있다. 이렇게 읽은 책은 작가 말처럼 더 깊이 책을 읽고 내면을 알고자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 어떤 사정으로도 진실을 덮어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이 인간 의식의 맨 밑바닥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임을 염두에 둔다면, 진실 가리기는 문학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고, 그 작가들을 영원히 허위 속에 가둬놓는 일이 된다. (P84)

 

🔖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P88)

 

위의 <봄날은 간다>를 읽고 ‘잘 만들어진 실패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독파 미션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내 젊은 날에 대해 나는 다른 삶을 위한 준비보다 그냥 그 자체의 삶을 살았던 비중이 더 컸다. 노력하지 않았던 지난 날로 인해 지금의 불안이 더 가중되는 것 같아 젊은 날을 예쁘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금 내 아이들에게 다른 삶을 준비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나는 봄날의 아름다움 대신 실패담을 잘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우리의 실패와 변화도 이 사소한 것들과 세상의 거창한 이론들이 맺게 되는 관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P175-176)

 

🔖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P176)

 


 

 

이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학창시절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는 듯 좋았다. 어둠에 갇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고 자신의 무력함을 분노로 내장 속에 칭칭 감으며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은 나도 될 수 있고 다른 이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사소한 사정'에 귀 기울이면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어둠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을 통해 황현산 선생은 그동안 ‘포기할 수 없는 전망 하나’와 줄곧 드잡이를 해온 것 같다고 말했는데, 모든 이의 깜깜한 밤에서도 잠 못 이루며 이루고자 한 꿈들에 대해 소회를 글로 읽으며 나 역시 이해받은 것으로도 이 책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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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 P27

우리의 실패와 변화도 이 사소한 것들과 세상의 거창한 이론들이 맺게 되는 관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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