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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밖에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5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2월
평점 :
『그렇게 할 수밖에』
자음과 모음
최도담 장편소설
제 9회 2021 네오픽션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ON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강라경과 할머니(최영혜)는 깨져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기섭을 죽이고자하는 복수를 계획하는 중 죽어버린 이기섭과 청부살인업자 ‘연’의 이야기는 잔인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가족과 따스함이 담긴 소설이었다. 제목이 『그렇게 할 수밖에』로 지어진 이유를 알 수 있는 반전도 있다!
소설에서 강라경은 힘들었던 시간을 정신과에 상담을 다니면서도 잊을 수 없는지 해결하지 못한채 지낸다. 오히려 의사도 치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 체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상처가 절로 아무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났을 때의 기억을, 시간은 놓지 않는다. 다른 기억들로 뒤 덮어 줄 뿐이다.
이기섭을 죽여야 한다는 복수만 생각하는 강라경은 목적을 위해서는 나머지를 포기해야하는 데 그 포기가 과연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무의미해져버린다는 생각에 점점 더 무조건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집착한다.
자신이 이기섭을 죽여달라고 ‘연’에게 의뢰하지만 이미 이기섭이 죽은 후라 의뢰는 수포로 돌아간다. 의뢰를 했다는 것으로 인해 죄를 지었다 생각하는 강라경은 경찰의 질문하나에도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한다. 범죄를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은 착각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상상일 뿐이었는데도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실제 죄를 지었다면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서사에서 놈에 대한 증오가 분노가 밑바탕에 있다. 늘 그런 증오로 인하여 세상과의 소통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단절시킬만큼 힘들었지만 또 세상으로 나올 힘을 내고 나오길 기다려주는 할머니와 살아보고자 한다.
과연 소설에서 복수는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주인공에게 남은 가족은 할머니인데 자신의 복수였는지 할머니의 복수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할머니는 어쩌면 강라경보다 더 오래전에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이기섭의 죽음보다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사랑해준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흔적들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비밀 거래의 최적화된 사람들인 ‘연’이라는 인물로 점점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졌고 어떤 특별함을 갖고 있는 조용한 사람들일지 마지막까지 베일을 풀어놓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라 더 잘 읽혀졌다. 쉬운 단어를 사용하되 글을 작정하고 쓴다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전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네오픽션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라 궁금해서 읽게 되었지만 최도담 작가의 앞으로의 소설도 기대가 된다.

🏷️ 두 세계는 평행선처럼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실과 꿈의 각각 별개의 공간처럼. 나는 두 영역 사이의 어느 섬에 고립된 느낌에 빠졌다. 누구도 내가 놓여 있는 곳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P20
🏷️ 뛰어넘었다고 생각한 상처의 시간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상처의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상처를 입는 순간엔 누구도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감별해내는 것이다. P27

🏷️’목적’이 있는 삶은 알차지만 고되다. 목적에 묶이면 다른 부분은 암흑이 된다. P55
🏷️죄책감 따위는 내 안에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재단하는 방식은 지독하게 안일하다. 마치 나무의 초록을 모두 같은 초록이라 분류하는 것과 같다. 색상 표본에 없는 색상, 경계의 어딘가에 놓여 있는 색상을 대충 묶어서 하나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만 그건 분명 오류다. 인간의 감정은 그 스팩트럼이 훨씬 넓다. 누군가를 죽였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는 인간은 표본에 있는 경우일 뿐이다. 인간은 그런 표본 너머를 수없이 넘나든다. P85
🏷️할머니와 나의 공모를 지나가 이해할 리 없었다. 외로움이 훅 들이닥쳤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P108
🏷️보이는 면 너머가 열리는 때가 있다. 허물을 벗듯 갑작스럽게 보이는 면 너머가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는 것과 다른 삶에 직면 할 때, 그것은 내적 충격을 동반한다. 충격을 받으면 방어 기제를 동원한다. 부정하고, 저항하고, 분노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정신과 의사들이 내게 화를 내도 좋다고 말했던 이유다. 통상적 감정의 경로를 따라가야 건강한 것이다. P173
🏷️ 할머니 삶의 아주 작은 조각을 볼 수 있는 지점에 나는 서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다. P182
🏷️그러니 끝까지 가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아직 끝에 이르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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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모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