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글에서 종종 인간의 완성된 모습, 즉 자아의 이상적 모습을 상징한다. 그의 ‘꽃나무’도 역시 이상이 꿈꾸어 마지 않던 근대적 자아 실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근대적 인간이 되고 싶어했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4살 때 백부에게 입양되어 사실상 두 집-친부모와 양부의 집-의 맏이로써의 부담-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책임감을 안고 그는 건축가가 되어야만 했다.
그는 ‘오감도’ 시 ‘제2호’에서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라고 말한다. 지금 그의 시에는 붉은 꼬부랑 줄이 그어져 있다. 띄어쓰기무시를 알리는 기호인 것이다. 그는 온통 붉은 줄 투성이 시와 소설을 쓰면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것들을 파괴하거나 혹은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근대적 자아로 나아가는 그의 노력이다.
그러나 결국의 그는 현실과 자신의 이상 사이의 거리에 의한 괴로움으로 인해 자아의 분열을 맛본다. 그의 근대적 자아는 타협(“악수”)할 줄을 무르고 그의 말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개 있소”-을 들으려고도 않기 때문애 종국에는 그를 “통제” 할 수도 없게 된다. 그가 “열심으로 생각하는” 근대적 자아의 모습은 타협할 줄 모르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통제 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무관하지않은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에게 개인적 의미의 자아 실현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한 것인지.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없소 꽃나무는 제가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 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한것처럼나는 참으로이상스런흉내를내었소.”

그것은 철저한 고립,불통-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인 것이다. 그는 “막달아”난다.
이상은 그 어느 것에서고 벗어나지 못한다. 가부장적 전근대적인 책임감과 식민지 상황이라는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한 채, 그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채 불안해하고 절규하면서 “막다른 골목”-죽음,자살-을 향해 질주한다. 때론 “묘혈”을 판다.
이상의 삶을 통해서 나는 그의 해독할 수 없는 시를 읽었다. 이상의 시를 통해서 나는 이상이 막다른 골목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담을 마주하고있는 모습을 본다. 돌아갈 수도 있지만 차라리 그 담에 머리를 찧고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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