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표지디자인이 무척 흥미로운 책이다.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는 문구는 더욱 흥미롭다. 그래서 펴든 [집단기억의 파괴]는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와 문화와 현대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서는 당장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동안 망설였던 것은, 출판사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출판사 "알마"에서 펴낸 책이다. 이 출판사가 내게 주는 그간의 이미지는 다소 이중적이다. 내가 평소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욕심을 내는 책의 분야가 역사와 사회관련 서적들인데 이 출판사는 주로 그런 분야의 책들을 펴내는 듯하다. 이 출판사 책들은 제목만 보고 혹은 기획의도만 보고서는 당장 읽어야겠다, 내 무식함을 잔뜩 채워줄 것 같다는 기대감에 나를 들뜨게 한다. 그러나 정작 펴서 보면 "어 렵 다 ! " 내게 접근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지식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좌절감을 던져주곤 했던 출판사가 바로 "알마"다.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막 읽어대고픈 욕심과 막 읽어대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 지식의 한계 때문에 애(愛)와 증(憎)의 감정 모두를 주는... 각설하고,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하면서는 자와 펜을 들고 시작했다. 밑줄 긋고 한 문장, 한 글자 곱씹으며 읽었다. 다행히 초반의 그 긴장감과 집중력 덕분인지 책은 예상보다도 수월하게 읽혔다.

 

   글쓴이 로버트 베번은 주로 건축과 건축가들에 대한 글을 주로 써온 영국 출신의 작가이다. 이 책 [집단기억의 파괴]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들의 다툼 속에서 수난을 겪다 결국에는 사라져버린 세계 건축 유산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수많은 나라가 문화재 보호에 동의하고 공동의 세계 유산이라는 개념이 확립되는 가운데에서도 왜 이런 파괴가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p34) 글쓴이가 직접 발로 뛴 흔적의 산물인지 글은 무척이나 현장감 있게 느껴졌고, 역사와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안목이 꽤나 넓고도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 인명살상"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이 가지는 건축물 파괴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2차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유대인 학살에 앞서서 벌어진 "크리스탈 나흐트". 만 하루 정도의 시간 안에 267곳의 시너고그와 10여곳의 유대인 공동체 건물,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유대인 가옥과 상업 구역의 공격은 유대인 학살의 전조였다. 티베트에 산재했던 수많은 사원들에 대한 중국의 파괴행위나 탈레반 정권의 바미안 석굴사원 파괴, 중국 문화혁명기에 벌어진 수많은 건축물들에 대한 파괴, 이라크 전쟁과정에서의 건축물 파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방 공격 과정 등에서 벌어진 수많은 유적 파괴, 9.11테러 당시의 쌍둥이 빌딩 파괴 등은 실질적인 파괴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상징적인 건축물의 파괴는 개개인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그 집단의 기억이나 정체성,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의미한다는 것이 글쓴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인 듯 하다. 글쓴이는 이런 파괴행위들을 "문화청소"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문화청소는 그 집단 혹은 민족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집단기억과 공유된 역사"(p70)를 파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존재까지도 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물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와 파괴가 가져오는 집단기억의 상실을 다양한 사례로 언급하고 있어서, 이 책 덕분에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와 사회를 보는 안경을 얻은 것 같다. 알마의 책들이 상당히 어려워 그간 내게 좌절감을 안기곤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나마 알마의 다른 책들보다 수월하게 읽혔던 것은 옮긴이가 친절하게 달아준 괄호 속의 해설들 덕분이었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