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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녀
손창섭 지음 / 예옥 / 2010년 8월
평점 :
시대를 초월한 막장 드라마를 보다?
언젠가부터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유행이다. 불륜을 초월한 패륜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도한 설정까지 저런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막장" 설정을 욕 하면서도 중독성(?)이 있어 보게 되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데, 책을 통해 막장을 접하게 될 줄이야...
손창섭의 장편소설 [삼부녀]를 읽었다. 손창섭이란 이름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잉여인간]이다. 고등학교 땐가 읽었던 것도 같은데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잉여인간"이란 제목 자체가 무척 선명하게 머리 속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음. 그 잉여인간을 썼던 손창섭의 작품이다. 사실 손창섭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면서 그에 대해 좀더 알 수 있었다. 그는 1922년 평양 출생이란다. 앞서 말한 "잉여인간"으로 1959년 동인문학상을 받았고,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책 앞날개), "최근까지 아내와 함께 도쿄에서 거주해 오던 그는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책앞날개)는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알게 된 것도 물론 이 책을 통해서다. 그랬구나..
널리 알려진 작가가 이렇게 종적을 감추고 묻혀서(?) 생을 마감했던 것, 청소년 필독 소설이라고 알아왔던 [잉여인간]을 썼던 사람이 이렇게 "막장드라마"적인 소설을 쓰기도 했었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두 가지다. 이 책은 그가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한국에서 썼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1969년 12월 30일부터 1970년 6월 24일까지 모두 29회에 걸쳐"(p242) [주간여성]이라는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작품을 연재했던 주간여성이라는 잡지의 성격이 그러하듯 이야기는 "세태적 통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p244).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씌여진 작품이 어떻게 이렇게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이야기라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주인공은 40대 후반의 강인구. 여동생의 남편과 불륜행각을 일삼다가 발각이 난 뒤로도 죄의식이라고는 없는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 보경, 보연 두 딸과 식모와 함께 나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그였지만 아내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 그의 가정은 다시 한번 혼란스러워진다. 강인구 또한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여대생과 원조교제를 하게 되고, 이혼 후 다방을 차린 그의 전처는 남자 관계가 복잡하기는 변함이 없고. 친자식처럼 키웠지만 그의 딸이 아니었던 보경은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놀라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이성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면서 혼란해하는 보연. 결국 두 딸은 각자의 길을 찾아 집을 떠나 버리고 강인구는 여대생 경희와 한 집에서 계약 교제를 벌이고, 거기다 친구가 죽으면서 부탁한 딸 경미까지 한 집에서 살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헉....! 뭐 이런 막장들이 다 있냐 싶을 정도로 놀라운데 더군다나 이 글이 씌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라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만약 이 글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욕 많이 먹겠다 싶을만큼....
40년 전의 글을 보면서 그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쓰러진 친구에게 병문안을 가면서 강인구와 친구가 선물로 구입한 것은 "과일통조림과 계란"(p153) 몇 꾸러미였고 강인구와 친구가 일과 후 종종 들러 스트레스를 푸는 곳은 "색시"가 있는 "요정"이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있는 시대였고, 강인구가 여대생과 원조교제를 하면서 지불하는 금액은 한 달에 "6만원"이었다.
이 글을 발굴(?)해 내어 다시 펴낸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교수는 책 말미에서 "'막장 드라마'의 이면"이라는 제목으로 이 글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데. 글쎄다.. 이면까지는 잘 모르겠고, 내게는 그저 놀랍고도 파격적인 시대를 초월한 "막장 드라마"로 이 글이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