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하는 것.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두 부류다. 더럽거나 혹은 깨끗하거나... 매국노와 독립운동가. 나를 그 두 갈래의 갈림길에다 세워둔다면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것인가.  독립운동가의 길을 가련다하고 주저없이 말하지 못하는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것저것 따져보고 계산해보고, 어느 쪽이 나한테 더 유리한 것일까를 따지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일까... 좀더 어렸을 때라면 "당연히!" 독립운동가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나는 망설여진다.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였지만,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이 토히로부미의 맏아들 이토 히루쿠니에게 아버지의 죄를 사과하고,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의 양아들이 된다."(p139). 안중근을 칭찬하기는 쉬워도 안준생을 욕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 [1910년, 그들이 왔다.]는 조선사의 곁다리로서가 아니라 당시 일본의 입장이나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반가운 마음으로 펼쳐든 책이다. 그간 조선의 역사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펴낸, 이 책의 글쓴이는 이상각. "조선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글쓴이는, 일제강점기 전후 21명의 일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즈음의 조선역사를 공부하면서 주워들은 이름이 대부분이다. 책은 "정한을 꿈꾸다" / "열도의 침략자들1" / "열도의 침략자들2" / "진정 그들은 한국을 사랑했을까"의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만난 그들은, "일본순사"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악랄하고 잔인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인간들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악의 평범함, 사고의 부재는 이 책에서 소개된 21인의 일본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일테다. 인간 개개인으로 보자면 "몹쓸 인간"은 아닌데, 당시의 일본과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개입되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자주 묻게 되었다. "니토베 이나조는 20세기 초 국제적인 시각을 지닌 대표적인 교양인이자, 퀘이커 교도로서 경건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위인대접을 받는다."(p86), 이광수가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셔서 이런 위인을 내리셨는가."(p250)라고 극찬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나 하버드대학에서 철학, 경제학을 공부하고 일본문화의 수준을 과시한 오카쿠라 텐신 역시,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쁜 인간들이 아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개인적인 삶 역시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그들의 국가관. 일본을 너무나 사랑했던(?) 것이 그들의 비극인가. 일본을 위해서 조선은, 조선인의 희생쯤은 그들의 안중에는 없었던 것일까.  몇 해 전 TV프로그램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피력하던 일본인 교수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비난과 모멸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꼈던 배신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에 포함시키기엔 아까운, 조선인을 위해 애썼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 같은 훌륭한 이름을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조선을 사랑했던 "아사카와 다쿠미"의 이름 역시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법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 내겐 꽤나 유익한 시간을 제공해 주었던 책이다. 이 책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일본을 보느라 조선을 보지 못한 우를 범했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간 한쪽만 쳐다봤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넓게 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 [1910년, 그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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