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도둑 우리문고 21
제리 스피넬리 지음, 김선희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난 유리, 네 이름은?"

난 내 이름을 알려 주었다.

  "거기서도둑." (p9)

 

  특이한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내 이름은 도둑". 2차대전 중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상황을 소설로 그려낸 책이다. 영화나 역사서나 소설을 통해서 유대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심스러웠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게, 그저 놀랍고 끔찍하고 무서울 따름이었다. 어떻게 "인 간"들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당시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상황이 강조되어 있었다. 아니, 강조된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가 비극적이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책 [내 이름은 도둑]은 의외로 담담하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상황이기 때문일까. 그 어린아이가 하필이면 엄청나게 눈치도 없는, 도둑 소년이기 때문일까.

 

   이 책을 쓴 "제리 스피넬리". "이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이야기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들까지 즐겨 읽는 성장 소설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책 앞날개)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사는 어린 소년. 도둑이다. 부모도 없고, 일정한 거처도 없고, 이름도 없는 소년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달릴 때마다 "거기서! 도둑이야"하고 외치니, 자신의 이름이 "거기서도둑"인 줄 알고 있는 소년. 소년의 눈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가죽장화"(군인들을 말한다.)들은 "때론 짐승이고, 벌레고, 벌레만도 못한 유대인들"에게 수염으로 거리를 청소하게 하거나,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둑으로 몰아 때리거나 하는 짓을 서슴치 않는다.

 

   소년은 정체성이 모호하다. 자신이 처음부터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때론 집시가 되고, 도둑질을 하다 만난 제니나네 가족을 통해서는 그들의 가족이 되고 유대인이 된다. 그리고 시작된 미친 시대에 휩쓸려 게토로 들어가게 된 소년. 그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아파서, 어떤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죽었다."(p189)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게토와 "천국"(게토 밖)을 오가는 아이. 눈치도 없고, 상황판단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이지만, 본성이 따뜻하고 착한 아이는 "우리 가족을 먹이는 것, 코르착 선생의 고아들을 최대한 많이 먹이는 것, 그것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였다. 민첩함, 자그마한 몸, 무모할 정도의 뻔뻔함. 이 모든 것이 나를 완벽한 좀도둑으로 만들었다."(p189)

 

  소년은 도둑질에 대한 가책 따위는 전혀 없다. 오히려 게토와 천국 사이를 이어주는 벽돌 두장의 공간을 쉽게 드나들 수 없게 된 어느 날 자신이 너무 빨리 자라는 게 불만일 뿐. "내 발 때려. 나 그만 자라야 한단 말이야."(p223)라는 이 소년의 외침은 처절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더 이상 게토로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제니나의 아버지가 막아버린 게토의 구멍 때문에 아이들은 "천국에 갇히고 말았다."(p263) 그 이후의 소년의 이야기는, 더이상 소년이 아니지만 키는 155cm에서 크기를 마쳐버린 이 할아버지의 인생역정은, 도둑에서 할아버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평생 미치광이처럼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살아야 했던 이 사람의 인생은 누구에게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일까..

 

   비극적인 상황을 담담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려놓으니 오히려 가슴 한켠이 더욱 아파왔다. 예전에 봤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났다. 이상한 시대를 살았던, 아니 이상한 시대 때문에 스러져야 했던 그들의 영혼에 위로를 전하며 이 책은 덮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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