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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만든 남자 카이사르
필립 프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대단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제국을 만든 남자, 카이사르]. 카이사르, 시저, 케사르. 한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임을 안 것이 얼마되지 않을만큼 역사적 지식이 빈곤한 내게도, 가히 낯설지 않았던 이름의 사내. 서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그래서 대체 어떤 인물이었던가 무척 궁금했던 그 남자, 카이사르의 일생을 담고 있는 책을 한 권 읽었다.
글쓴이는 필립 프리먼. "아이오와 주 데코라에 위치한 루터대학교의 고전어학과 교수"(책 앞날개)라고 한다. 사실, 500여쪽이 넘는 분량의 책이라 펼쳐들기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어서. 지루하면 어떡할까 싶어서. 재미없으면 더더군다나 어떡할까 싶어서. 하지만 다행히도 책 첫머리의 "저자서문"을 통해, 글쓴이가 그닥 고루한 인물이 아닌 것 같아서, 같은 이야기라도 더 재미있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와같은 궁금증을 지닌 독자들에게 카이사르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최대한 쉽고 객관적인 서술을 유지하면서도 흥미진진함은 잃지 않는 균형감각을 선보이고 있다."(p503/역자후기) 그렇다. 이 책에서는 카이사르를 칭송하지도 그렇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카이사르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고 있을 뿐. 책을 통해 본 카이사르의 삶은 한편의 영화 같다. 아니 극적인 영화들이 오히려 카이사르의 삶을 베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파란만장했던 삶. 몰락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져나가고, 갈리아정복을 이뤄낸 그의 이야기는 자수성가형 위인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글쓴이의 매력적인 글쓰기도 한 몫을 하는 건 분명하지만, 카이사르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재미와 이야깃거리가 많기 때문일 테다.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제왕절개, 하지만 카이사르는 사실 제왕절개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깃거리는 흥미로웠다. 해적에게 잡혔을 때 자기 몸값이 겨우 20달란트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까지 올렸다는 이야기, 그가 만년에 월계관을 쓰고 다닌 이유가 갈수록 숱이 적어지는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인간적인 면모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재미있다. 그의 높은 자존감을 설명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이사의 더욱 매력적인 면모는 그의 "포용력과 관용"이 아닐까 싶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용서하고 관대한 승리를 이루고자 했던 자신의 계획을 모두 망쳐놓았다면 알렉산드리아의 통치자들을 호되게 꾸짖었다."(p401) 실익과 인간미 모두를 챙기는 이 멋진 사내를 보라. 한 때 그의 동지였지만, 결국 그의 적이 되고만 폼페이우스의 죽음 앞에서 보인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결코 가식이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끝까지 대항했던 적에게는 가차없는 처벌을 내리는 단호한 면이 있지만, 항복한 적에게는 더할나위없는 관대함을 보이는, 이 인간적인 면모의 정치가에게 정이 간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봤다. 카이사르와 같은 정치가가 나타난다면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브루투스 너마저..?(이건 셰익스피어의 대사고, 실제로 카이사르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들아, 너도(Kai su, teknon)?이었다고 한다.)"란 소리를 듣는 편보다는 이 매력적인 사나이의 편에 설 가능성이 많다는 고백은 위험한 생각일까...? 누가 옆에서 써준 대사를 읊기라도 하는 냥 멋있는 이야기만 내뱉는 이 사나이를,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이 사나이를, 그리고 시민들 편에 서서 생각했던 이 사나이를, "독재자"라고 등돌리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로마에 있는 벗들에게 이번 원정의 결과를 간결한 몇 마디로 정리해 보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p435) 카이사르와 카이사르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조각난 상식들을 한 권으로 꿰매어 주고 있는 책. 내겐 카이사르가 살았던 시대로 '가서 보고 알게끔' 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