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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ㅣ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문제작"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지 모르겠다. 몇 개월전에 역사분야의 문제작(?) [왕을 참하라]를 읽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터라 얄팍한 독서이력이나마 다른 분야의 책보다는 그래도 역사책을 즐겨읽는 편이지만, [왕을 참하라]는 그간 내가 읽었던 역사책들과는 참으로 다르다못해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책이었다. 도발적인 제목도 그러했지만, 글쓴이의 말투와 역사관은 독특함을 넘어 위험해보이기까지 했다. "재미사학자 백지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한 후 남미로 이민을 갔다가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강단에 서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연구 영역에는 경계가 없다."(책 앞날개). 그의 두번째 책 [조일전쟁]을 읽었다.
"조일전쟁"이란 제목이 낯설었다. 그간 역사서에서 "임진왜란"이라 일컬어 온 그 전쟁을 가리켜 글쓴이는 "조일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명칭에 대해 그는 "이는 당시 뻔히 일어날 전쟁을 미리 방비도 못 하고 또 막상 전쟁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처도 못 해 나라가 풍비박산나고 숱한 백성들이 죽거나 참혹한 세월을 보내게 한 데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는 등신 같은 임금 선조와 썩어빠진 조정 신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전쟁 초기의 패배 내지는 막심한 피해를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p25)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는 임진왜란이 아니라 "조일전쟁"이라고 칭한다.
500여쪽이 넘는 이 책의 요점을 간략히 얘기해보자면... "양아치 김성일"(p100)따위의 말만 믿고, 일어날 것이 뻔한 전쟁에 아무 준비도 않고 있던 멍청하고 "등신 같은 선조"와 조정 대신들 때문에 일본에 호되게 당한 전쟁이 바로 조일전쟁이었다는 것. 이순신은 여러 모로 훌륭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불패의 영웅 이순신의 이미지는 과장된 면이 많다는 것. 이순신도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실수도 있었고, 인간적인 면모도 있었는데 이순신을 치켜세우느라 원균에 대해서는 간신배의 전형으로 낙인 찍어온 것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 등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는 과장에 허구투성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점 되겠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책 [조일전쟁]을 통해 1592년에 발발한 그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전쟁 전의 상황에서부터 전쟁의 전개, 전쟁에 사용된 무기, 전쟁과 관련한 조선, 명, 일본 3국의 입장, 그리고 3국의 전쟁 관련 인물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분석해보겠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 관심만 있었지, 아는 바가 별로 없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1592년에 시작된 그 전쟁에 대해 몰랐던 것 여러가지를 알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불편했다. 우선 글쓴이의 말투. 아니 글투. 이건 대체 내가 역사서를 읽는 건지 모연예인이 예전에 인터넷 방송 따위에서 내뱉었다는 독설을 듣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의 막말.. "등신 같은 선조", "양아치 같은 김성일" "멍청한 신립"(p175)등의 표현은 차라리 점잖은 축이고 "귀 막고 편안히 자빠져 있었으니"(p101), "나라고 지랄이고 내팽개친 인간이 상양아치 선조였다."(p184)와 같은 말들은 읽기 참 뭣했다. 글 읽으면서 "이렇게 하고 싶은 말 다 내뱉고 막말을 해댔으니 이 사람, 책 쓰고 속 한번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왕을 참하라] 두 권으로 묶을 수 없는 분량이라 별도로 묶어낸 책이라는데, 이런 막나가는 수식어와 글쓴이의 비아냥거림만 뺐어도 [왕을 참하라]와 함께 두 권으로 묶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 하나. 글쓴이의 포용력 없는 역사관. 이렇게 말하면 또 글쓴이는 요모조모 반박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글쓴이는 "바로 이 메이지 유신을 벤치마킹하려다 실패한 혁명이 김옥균의 갑신정변이고, 성공한 혁명이 5.16혁명이다."(p438)라고 말한다, "물론 필자도 박통이 독재자인 것을 안다. 그런데 반론을 제기한 독자들은 아마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세대라 그러는 것 같아 충분히 이해는 한다."(p269)고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포용력 있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는 그닥 포용력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한 잡지에 소개된 "한국 5천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10인"을 선정해달라는 설문조사에서 역사학자 10인과 CEO30인, 대학생 30인이 뽑은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한심한 역사학자들 그리고 한심한 CEO들 그리고 깡통 대학생들아, 역사 공부 좀 똑똑히 해라. 인간들이 어째서 을지문덕 장군을 그렇게 가볍게 볼까?"(p268)와 같은 말을 던지는 것은...글쎄...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답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열 올리며 막말을 던지는 글쓴이의 모습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이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
우리 역사에 대한 열정과 역사를 보는 기존의 관점과는 또 다른 관점의 제시라는 면에서 글쓴이의 노력과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문제에 얼굴 붉혀가며 열변을 토하는 글쓴이의 태도와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고 주장하는 배타적인 모습은 독자들 불편케 하는 요소일테다. 조선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 그리고 조선사를 보는 또다른 시각을 제시한 책 [조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