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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한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8월
평점 :
"엄마, 엄마, 엄마"하고 세 번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여지는 사람은 한국사람이란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을 듣고서 정말인가 싶어서 "엄마, 엄마, 엄마"하고 천천히 불러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걸 보니 나 또한 한국인이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낳아서 길러 진짜 사람되게 만들어주는 사람. 엄마. 이 책 [모정의 한국사]는 그래서 더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역사를 만나다." 위대한 어머니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역사는 어떤 것일까 싶어서.... 그리고 대부분 남자들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온 역사책 읽기에서 벗어나 "Herstory"도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은 모두 일곱분. 김만중의 어머니 해평 윤씨, 성간의 어머니 순흥 안씨, 박비(박일산)의 두 어머니, 양사언의 어머니 문화 유씨, 서성의 어머니 고성 이씨, 이준경의 어머니 평산 신씨이다. 윤씨, 안씨, 유씨...하고 나열하다보니,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서양의 역사나 여성은 이름없이 그저 성씨만으로 기록되는 우리의 옛 역사는 여자들에게 다분히 불공평해보인다. 책을 읽으면서도 역사가 여성들에게는 여러모로 부당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야 했다. 분명 이 책의 제목은 [모정의 한국사].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책이지만 김만중의 어머니나 성간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녀들의 삶 자체가 아니라 훌륭한 친정 아버지를 두었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기 때문에 그녀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약간은 불편했었다. 또 하나. 예전에 양반들이 공부했다는 "보학"을 연상케 하는 "누가 누구를 낳고~"식의 계보 뜯어보기는 사실 좀 지루하기도 했었다.
앞서 읽었던 타오름출판사의 한국사 시리즈의 책 [불륜의 한국사], [불륜의 왕실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다른 역사서와는 그 구성이 다르다. 독특하다. 각 장마다 앞부분에는 각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고 뒷부분에서는 앞서 소개한 인물과 관련된 유적을 직접 찾아나서는 글쓴이의 기행문이 나란히 실려있는 형식이다. 앞서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는 글쓴이의 기행문 중에 글쓴이와 고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생경해, 글쓴이의 자의적 역사해석은 아닌가 하고 삐딱한 눈으로 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역사에 대한 글쓴이의 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만한 관심과 애착없이는 이렇게 많은 유적을 찾아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박비(박일산)의 두 어머니와 양사언의 어머니 이야기가 내겐 놀라웠다. 박비, 그러니까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의 손자인 그. 세조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난 박팽년의 손자. 그는 태어나자마자 외가의 노비 자식으로 키워졌고 성종 때 가서야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를 낳아준 어머니의 사랑도 눈물 겹지만, 자신의 딸과 박일산을 바꿔 키워야했던 노비 언년의 사랑은 정말로 놀라웠다. 또 양사언의 어머니 문화 유씨가 자식들을 서자로 차별받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바다.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
역사와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는 책. [모정의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