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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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예전에는 역사에 하나의 정해진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선악이 분명하고,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한 평가 역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역사책의 수만큼 혹은 역사를 쓰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역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위 말하는 정사正史라는 것 역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합의'된 결론일 뿐 과거의 실제 사건과는 어쩌면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을 읽었다. 전체 다섯 장("번외"를 포함한다면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는 반역으로 일어섰고 결국 반역으로 왕조의 몰락을 보게 된  나라 조선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의 역사를 500년으로 잡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3건의 반역으로 나누어 보았을 경우 20년에 한번 꼴로 "난리"가 있었다. 거 참.. 난리군..! 얼마 전에 읽었던 어느 역사책(백지원, [왕을 참하라])에서는, 조선은 망해도 일찌감치 망했어야 할 나라였다고 개탄하는 걸 보았다. 그 책의 요지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밥값도 못하는 왕과 양반들 배를 채우느라 수많은 백성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안타까운 생을 영위했던 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의 이유도 가치도 없다는 것.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난 까닭은, [반역~]이 조선시대의 이야기 중에서도 시끌벅적하고 안타까운 순간들을 모아놓은 글이라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조선은 망했어도 일찌감치 망해어야 할 나라였다고, 개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결과를 알고서 과거를 바라보는 자들의 뒤늦은 후회나 아쉬움 같은 게 아닐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권력이 뭐길래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형제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그 틈바구니에서 힘들어하던 백성들이 참다 못해 세상을 뒤엎어버리겠다고 일어섰을까?

     이성계는 반역으로 조선을 창업했다. 이방원은 형제들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성계는 그런 아들이 미워 반란을 도모했다.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올랐다. 이징옥과 이시애의 난은 그에 대한 반발이이었다. 연산군의 폭정에 중종반정이 일어났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조광조를 죽였다. 조선조 최악의 임금 선조는 "매우 유능하여 백성의 신망을 받는 자"(p243)를 자신의 적으로 규정했고, 정여립은 그래서 죽어야 했다. 자신보다 "유능하고 백성의 신망을 받"고 있는 아들 광해군은 그래서 미움을 받아야 했고, 인조반정은 광해군의 폭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조가 장치해 둔 덫이었다. 역시나 최악의 임금 중 하나로 손꼽힐만한 임금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를 죽였다.  숙종이 뿌려놓은 불행의 씨앗은 경종의 죽음에서 영조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으며,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역시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으며 그의 죽음에도 의문이 남는다. 정조의 치세를 끝으로 조선은 구제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일으킨 난이 홍경래의 난과 동학농민전쟁이다......!    성경 첫머리엔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식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던데, 이 책 [반역~]을 통해 들여다본 조선의 역사를 거칠게나마 정리해보자면 "누가 누구를 죽이려 했고" 혹은 "누가 누구를 죽이고"다. 그 끝을 알기에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 원균이나 광해군, 사도세자와 고종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쓴이의 인물평이나 사건을 보는 견해가 내 개인적인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지만,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고 그 밖에도 더러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역사책을 읽는 재미란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의 공유.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지 않고 역사 속으로 뛰어가버린 어느 대통령의 죽음 역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의 결과는 이미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결과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살아야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 되고, 실패한 쿠데타는 "난"이 된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 반란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지난 시대의 반란을 말하고 있는 책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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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8쪽의 "성종의 모후 정희왕후"라는 말은 오류인 듯하다.

2. 325쪽의 "16대 고종"이라는 말 역시 오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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