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양의 탄생 1881 함께 읽는 교양 3
임승휘 지음 / 함께읽는책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가 당신을 평가해 줄 것입니다." 
    "XX. 작두타지 마라. 역사는 기억한다."

  2009년 5월의 큰 사건을 접하며, 심심찮게 들었던 말들 속에는 "역사"가 있다. 각종 추측과 루머, 비난과 변명의 말들 그리고 잇따라 들려오는 시국선언을 대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 다음에 "역사"는 과연 2009년 5월을,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 것인가가...   역사를 "과거"의 동의어 쯤으로 생각할만큼, 빈약한 사회의식 역사의식을 가진 나 같은 사람조차  "역사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던 사건이었고, 그 해답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의 글쓴이(임승휘/선문대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와 과거는 다르다."(p326)고 한다. "역사는 세상을 해석하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살아 숨쉬는 인간이나 살아있는 집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인간과 집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과거는 역사 연구의 가시적인 대상이자 인간이 살아왔던 세계의 작은 조각들이다. 따라서 이야기인 역사는 자신이 해석하는 대상인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과거와 역사는 다르다."(p327)고 말한다. 그렇다면 앞서 던졌던 나의 의문은 반쯤 해결되었다. 2009년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래왔듯이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다시 평가받을 것이라고.. 과거의 사실은 하나이지만, 그 사실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수없이 다양할 것이므로 정해진 답이라는 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식인양의 탄생]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역사책을 읽었다.(식인양의 탄생이란 제목은 18세기 영국의 엔클로저운동을 빗댄 말이다.) 서양의 '과거'를 34개의 작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너쪽 정도의 분량으로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으며 주제와 관련된 독특한 삽화들이 내용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책이다. 기존에 읽어왔던 통사적인 서양역사서와는 체계도, 어투도 사뭇 다르고, 책을 읽다보면 과거 사실에 대한 '의미 부여'가 역사라는 글쓴이의 관점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헬렌켈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장님에다 귀도 멀었지만,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고, 이후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훌륭한 삶을 살았다로 정리되는 그녀의 삶 말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위인 헬렌 켈러는 그렇게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p322)고 말한다. 정치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그녀의 반쪽짜리 삶만이 위인전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으며, 그녀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은 철저히 숨겨져왔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민주주의의 원형이라고 설명되곤 하는 그리스의 정치체제 또한 마찬가지다. 글쓴이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해 "그러나 자유 그리스의 상징인 아테네의 고대 민주주의는 환상이다. 그것은 노예의 고통, 가난한 이들의 소외, 여성의 예속을 자양분으로 빨아먹고 자라난 보기 좋은 과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 민주주의는 결코 평등을 지향하지 않았다."(p23)고 말한다. 아. 내가 읽어왔던 역사는, 그 역사를 통해 내가 본 과거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사실인 걸까? 물음표를 달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우리가 봐 왔던 역사는 특정 관점에 부합하는, 선택되어진 반쪽의 역사임을 글쓴이는 역설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서양이 진보를 발명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후진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p144)라는 글쓴이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서양, 백인, 남자, 민주주의"의라는, 역사를 보는 안경을 깨어버려야겠다. 지금부턴 내 눈으로 과거를, 역사를 보아야겠다. 어쩌면 이 책 또한 한 역사교수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반영된 또 하나의 편견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지금껏 별 생각없이 보아온 것들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는 것.  [식인양의 탄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