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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쾌인쾌사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역사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의 수준에서는 상상도 짐작도 잘 되지 않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옛날 이야기" 속에서 더 많은 재미를 찾게 되는 건 개인적인 취향 탓이리라.. [조선사 쾌인 쾌사]라... 그간 "史"자 달린 책에서 접하지 못했던 "쾌快"라는 한 글자에 끌려서 펼쳐든 책이다.
경제가 어렵다. IMF경제 위기 때보다 체감 경기는 더 나빠졌다고들 한다. 글쓴이는 "이 책은 유쾌, 상쾌, 통쾌한 책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가려 뽑았다."(p5)고 한다. 다들 어렵다고들 하는 때 역사책을 통해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글쎄..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내가 생각하기에, "조선500년 역사에서 가장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라는 글쓴이의 생각은 어디까지는 글쓴이만의 혹은 글쓴이와 취향이 비슷한 독자층에 한해서 공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그닥 유쾌하지 않았고, 결코 상쾌하지 않은, 그렇다고 통쾌한 웃음을 날린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 이것도 취향의 문제라고 해두자. 분명 이 책을 유쾌상쾌통쾌하게 읽은 사람들도 있을테니 말이다.
제목을 통해 기대했던, 그리고 처음 책을 펴들며 기대했던 내용은... 소위 일반적인 역사서에서 다루는 왕실 중심의 정치 중심의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큰 줄기에서 뻗어나온 곁가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재미있지만 주류 역사서에서 그늘로 처리된 "야사"혹은 "일화"와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4장(쾌인快人, 쾌사快事, 쾌시快詩, 쾌담快談)으로 구성된 이 책의 초반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신숙주의 손자라는 신용개의 술과 관련된 이야기며,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한 이항복의 해학 넘치는 사건들. 그리고 김삿갓의 방랑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이며, 정종의 아들 순평군의 선택적(?) 무식함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읽으면서 더러는 안타깝고 더러는 웃으며 그들의 삶을 생각케 했다.
하지만 2장(쾌사快事) 후반부터는 그 시대의 음담패설로 일관하고 있어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 글쓴이에겐 아주 미안한 말이 될 것 같은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그저 그런 야사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독서의 목적이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술자리에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역사 속의 가십꺼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 청소년에겐 나중에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