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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 -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2월
평점 :
몇 해 전에 한동안 도서관에서 "박완서"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라면 무조건 찾아다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게으름 탓에 많은 책을 읽진 못했지만 "박완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들을 읽고 나서 후회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 [그 산이 정말~], [오만과 몽상], [그 해 겨울은~], [도시의 흉년]과 같은 글들을 읽으며 '참 좋다.......어쩜 이렇게 공감가는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세 가지 소원]. 참 오랜만에 접해보는 박완서 선생님의 글이다. 한동안 그렇게 열심히 "박완서"라는 이름을 찾아 탐독했건만, 게으름과 실용에 치우친 책읽기 탓으로 글쓴이의 최근작은 거의 읽어보질 못했다. 표지가 참 깔끔하다. 박완서라는 이름과 [세 가지 소원]이란 제목과 표지의 정갈함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펴들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구한테서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곤 한다. 1931년생인 박완서 선생님은 내겐 할머니뻘 되시는 분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나는 할머니에게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속의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에 등장하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준비해두고 계시는 할머니 같은 분이 바로 박완서 선생님이다.
"여기 실린 글들은 7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콩트나 동화를 청탁받았을 때 쓴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입니다."("책머리에" 中)
책에는 열 개의 짤막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하고 잔잔하지만 여러 가지 생각꺼리를 던져준다.
가장 공감이 가는 글은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이라는 이야기였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외지인들이 선녀봉의 단풍을 구경하러 오면서 봄뫼네 마을의 산은 앓기 시작한다. "도시 사람들의 산과 나무 사랑하기 운동은 점점 더 극성스러워졌습니다. 페인트 깡통까지 들고 와 나무와 바위에다 '산을 사랑하자,'. '나무를 사랑하자'라고 써놓고 가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남이 어질러 놓은 것을 온종일 치우고, 대신 그만큼 어질러 놓고 가는 단체도 있었습니다."(p99)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짓꺼리들(?)이 대부분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이 언제쯤 씌여진 걸까..(책에 대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바로 이것. 책에 실린 짧은 글들이 언제 씌여진 건지 연도 표시를 해줬으면 좋을텐데 싶었다..) 뭐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진 건 없는 듯 하지만, 한참 개발의 붐이 일던 70-80년대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구호에만 그치는 자연 애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학창 시절의 마음 따뜻한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가난했던 시절,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낭만과 추억으로 기억되는 내 아버지 세대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게 한다.
작은 이야기들이지만, 연세 지긋한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이라 그런지, 이야기 속의 푸근함과 맑은 생각들이 "보(시)니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