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일까.. 역사란 학문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마치 보물상자라도 여는 것 같은 셀렘을 느끼곤 한다. [사기]를 읽었다. 아니다. [사기]에 관한 강의를 한편 들은 거다. 역사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방법 그리고 인생사에 관한 충고까지 담아내고 있는 책.. 생각의 두께가 두꺼운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즐겁다. 이래라! 저래라! 단도직입적인 책도 좋지만 그런 류의 책들에 적잖은 거부감을 가진 터라 그런지 역사 속의 사람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런 책이 참 고맙다. "2007년 32회에 걸쳐 진행되어 각계각층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EBS기획시리즈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책 앞날개)를 글로 묶어낸 책이 바로 이 책 [난세에 답하다]이다. 사실 한번도 시청하지 못했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듣고서 이 글을 읽기 시작해서인지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 역시 한편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면을 유발하는 고리타분한 강의가 아니었다. 수다스럽진 않지만 입담 좋은, 그리고 재미와 유익함 어느 것도 놓치지 않은 잘 짜여진 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크게 9부 31강으로 짜여져 있다. 1부 <사기의 탄생>에서는 [사기]라는 걸작과 그 걸작을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 사마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마천의 인간적인 고뇌와 역사서술에의 열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사마천의 열정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열정이 글에서 진하게 묻어나와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기] 열전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사기 열전]을 읽어보긴 했었다. 원전에 가장 가까운 글을 읽고 싶어서 권당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짜리 [사기 열전] 중의 첫번째 권을 구입해서 틈틈이 읽고는 했다. 첫 권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두번째 권을 구입하려고 보니 어느 새 절판.. 게으름 탓이었던가....? 물론 게으름 탓도 있지만 [사기 열전]을 읽고자 하는 의욕만 앞섰을 뿐, 배경 지식이 없으니, 무수히 등장하는 그 이름들을 별 의미없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수동적인 책읽기에 그쳤던 탓도 있는 것 같다. [사기 열전]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사기 열전]을 읽는 재미를 훨씬 더 많이 느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사기]는 2000년 전에 쓰인 책이란 게 믿기지 않는 책이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아니 이건 과장이 아니다!) [사기]에는 인간사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들어있다. 사랑, 우정, 인간관계에 대한 것, 처세에 관한 것.. 책이 참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다. 주제별로 엮은 사기 열전 속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 사진들, 그리고 이 책을 위해 따로 그린 듯한 내용관련 삽화들까지 공들여 만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돋보이는 건 사기 열전 속의 다양한 인간상이 글쓴이의 세상사, 인간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섞여서 사기 열전과는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는 점. "[사기]를 읽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p433). 그래.. 다시 사기 열전을 펴들면 훨씬 더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겐 이 책 자체로도 참 만족스러웠지만 [사기 열전]을 다시 펴들 용기를 마련해 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