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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모든 신화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나, 이 책 다 읽었다~!" 자랑하고픈 책이다. 사실 600쪽을 넘는 책을 최근에 읽어본 적이 없다. 베개 삼아도 좋을법한 두툼함을 자랑하는 이 책은 분량이 655쪽이나 된다! 읽기 전엔 저걸 대체 언제 다 읽나 싶어서 고민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겨우 이틀이 걸렸을 뿐이다. 물론 휴일을 끼고서지만 말이다. 내겐 참 괜찮은 책이었다. 600쪽이 넘는다는 말에 읽기를 포기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남는 것도 많은 책이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픈 책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우선 책"값"부터 얘기해보련다. 이 책의 정가 "23000원"이다. 이런저런 할인혜택까지 적용한다손 치더라도 2만원은 줘야 될꺼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렵다는 시기에 선뜻 지불하기 쉽지 않는 만만찮은 가격이긴 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을 다른 방법으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책값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사실 그 말 별로 공감하지 않았다. 요즘 책값들이 왜 그리도 비싼지... 잔뜩 기대하고서 장만한 책들에 실망을 하게 될 때도 더러 있었기에... 내가 가진 지식이란 그릇이, 너무나도 빈 공간이 많다는 것 쯤은 알고 있기 때문일까, 내 빈 그릇을 채워주는 책들이 참 고맙다. 그래서 내가 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도 대부분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느냐가 되곤 한다. 이런 책은 그런 기준으로 얘기해보자면 100점 만점에 99점쯤 주고 싶은 책.
글쓴이의 "머리말"을 읽으며 아주 멋진 책 한권을 읽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다는 [오디세이아]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던 글쓴이.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신화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미치고 있다."(p12)는 그 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에 관심이 조금 더 많아 그간 역사이야기 주변에서 얼쩡거리곤 했었는데,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면 신화에 대한 선행지식이 있다면 내용습득이 더 용이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글쓴이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쳐왔던 그리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의 "모든"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다소 무모하다 싶기도 했지만, 그의 책은 그다지 무모하지 않았다.
전체 9개의 장을 통해 글쓴이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신화"들을 섭렵하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면서 신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있는데 간간이 "신화의 목소리"라는 란을 통해서는 신화와 관련된 연구성과나 신화의 원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 중간중간 앞서 언급된 신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를 해주기도 하고, 각 장의 말미에선 "신화의 이정표"란을 통해 신화 관련 연표를 제시하고 있어 구성이 깔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장점은 "신화"의 이야기적인 재미와 함께, 그와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역사*문화*사회적인 상식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일 듯 하다.
그리고 책의 여러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글쓴이의 서구 중심적이지 않은 시선도 참 좋았다. "이집트인을 이렇게 '악당'으로 바라보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의 이집트가 보인다. 진리와 정의, 박애, 그 밖의 미덕이 특별한 문명(경이로운 아름다움과바르게 살면 합당한 보답을 받는다고 믿었던 세계관을 만들어낸)을 빚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의 모습이."(p149)
머리에 든 것 많고, 머리에 든 것들을 재미나게 이야기할 줄 아는 글쓴이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신화에 대해 이야기 나눈 지난 이틀간의 시간이 내겐 참 즐거웠다. "Answer Man" 혹은 "지식의 왕"이라는 그의 별명 결코 과찬이 아닌 듯하다. 나는 그를 통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어간다. "엘긴 마블스"(p263)니 "에우헤메리즘"(p204), 등의 용어는 물론이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신화와 역사와 문화 이야기까지...